난민인권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 ODA 청년인턴에게는 6개월에 한 번 현지의 상황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외출장 경비가 지원됩니다. 난센활동가들은 ODA 청년인턴 하반기 해외출장으로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난민인권회의(APCRR)에 참석하고, 이민수용소 및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인 메솟에 있는 단체들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


태국 이민수용소 (Immigration Detention Center the Kingdom of Thailand) 전경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

방콕 도심에 있는 출입국사무소 내에 이민수용소가 있었습니다. 외진 곳에 있는 한국의 보호소만을 봐왔던 터라 방콕 중심에서 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 이민수용소라니, 뭔가 낯설기도 하면서 신기했습니다. 면회신청창구에 신분증사본과 출입국카드 사본을 제출하니 신청서를 받을 수 있었고, 이 신청서에 신청인과 수감자의 개인정보를 적고 서명을 해 제출하니 담당공무원이 신청서의 하단을 찢어 확인증으로 쓸 수 있도록 돌려주었습니다. 면회시간은 주중 10시 반부터 11시 반 사이, 하루 단 한 시간 뿐입니다.

I-TRAN(국제타밀난민옹호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 스리랑카 난민들을 방문하는 길에 APCRR에 참석했던 호주, 뉴질랜드 활동가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온 이들 중에는 보호소에 6년 간 수감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스리랑카 난민도 있었습니다. 처음보는 이들이 면회를 가서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는데, 함께 간 활동가가 누군가 면회를 와야 수감자들이 잠깐이라도 바람을 쐴 수 있다며 편하게 만나고 가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면회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여성과 남성이 각각 일렬로 줄을 서있다가, 10시 반부터 여성부터 수용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출입구로 들어가니 내부로 전달될 물품들이 담긴 바구니가 가득 놓여있었습니다. 제가 가져온 음식바구니에 아까 받았던 확인증으로 수취인을 표시해 공무원에게 건네준 후 다시 줄을 서서 여권과 명찰을 교환했습니다. 명찰에 써진 번호의 락카에 소지한 모든 물건을 넣고, 면회실 입구에서 소지한 물건이 있는지 확인을 마치고 나니 드디어 면회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휴대폰 등 대부분의 물품은 반입이 금지되지만 대화내용을 받아 적을 펜과 종이, 그리고 수감자에게 전해줄 돈은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가 면회실이라고? 이 시끄럽고 끔찍(horrible) 곳이?

30m 정도 되는 긴 철망 두 개가 1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었고, 100명도 넘는 면회신청자와 수감자들이 철망 양쪽에 빽빽하게 붙어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한국의 보호소면회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고, 철망에 최대한 몸을 붙인 채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질러야 겨우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함께 간 뉴질랜드 활동가는 면회실의 모습을 보고 끔찍하다(horrible)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끔찍하다는 단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회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 출처:https://youtu.be/u2QcmR_FNuM


수용소에 머물고 있는 타밀 난민 13명 중 6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최소 1년에서 최대 6년까지 보호소에 머물고 있던 기간은 다양했습니다. 한 청년은 본국에서 가족을 모두 잃었고, 체류가 만료된 후 보호소에 들어와 UN난민기구에 난민신청을 해 2년 만에 난민지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태국은 난민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UN난민기구에서 난민지위인정심사를 담당합니다. UN난민기구를 통해 난민지위를 인정받더라도 체류와 취업이 허가되지 않고, 출입국에 단속될 경우 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이전에는 돈을 주고 나오는 보석제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제도마저 없어져 한 번 수용되면 재정착이 되기 전까지는 몇 년이고 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타밀족은 현재 재정착 우선순위가 낮아 언제 재정착이 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입니다. 

두 개의 철망 사이를 한 간수가 걸어가고 있었고, 그를 통해 수감자에게 메모나 돈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수용소 내부에도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외부에 비해 가격이 2배 정도로 비싸다고 했습니다. 소수이지만 여성도 보였고, 1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7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구금되어 있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보통 여성이 아이와 함께 구금되면 아이와 여성이 풀려나지만 남성이 구금되고 아이를 돌볼 보호자가 없을 경우 아동이 구금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한 방 수용인원은 170여명, 화장실은 단 두 개 뿐


발디딜곳 없는 수용소 내부


수감자에게 수용소 내부의 상황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수용소의 열악함을 설명하며 한 방에는 150명 정도가 머물고 있는데 화장실이 단 2개 뿐이라 했습니다. 방은 10개 정도 있고 수감된 인원은 1000명이 넘는다고 했고요. 정말 큰 문제는 방문자가 없는 한, 식사시간을 포함한 24시간을 그 공간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식사는 밥과 치킨 맛이 나는 오이국이 주를 이루고 가끔은 안 좋은 상태의 삶은 계란을 주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스리랑카 난민 중 한 사람은 다리가 아파 별도의 공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밖에서 다리를 다치고 보호소에 수감되었는데, 적절한 치료 받지 못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운동시간이 있긴 하지만 시멘트바닥으로 된 막힌 공간에서 걸어 다닐  뿐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면회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삐이익하고 경보음이 세 번 울렸습니다. 난민들이 와줘서 고맙다며 활짝 웃는 얼굴으로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면회를 온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수감자들이 일제히 상의를 벗었습니다. 옷을 입지 못하는 규칙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같이 간 활동가분께 물어보니 내부에서는 대부분 더위 때문에 옷을 벗고 있다고 했습니다. 상의를 벗은 남성 오십여 명, 여성 대여섯 명, 그리고 아이 두 명이 자신의 물품이 전달되기를 기다리며 바닥에 앉았습니다.

밖으로 나와 함께 면회를 간 이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6년 간 수감되어 있다가 보석으로 나왔다던 이가 보호소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내부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현재 다른 국가에서 난민지위를 받았고, 자신도 그 국가로 갈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보석으로 나올 경우 비자가 주어지지는 않으며 보석을 통해 풀려난 상태라는 걸 증명하는 종이만을 소지할 수 있어 출입국에서 신분증을 요구할 시 그 증명서를 보여주면 구금을 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취업은 허가되지 않아 그는 외국에서 가족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높은 담벼락에 갇힌, 그들의 내일은 어디에

수용소에서 만난 난민들의 얼굴은 예상 외로 밝았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한창 꿈을 꾸며 인생을 그려갈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가 아닐까요. 높은 담벼락을 넘어 그들이 꿈을 꾸며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류은지 활동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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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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