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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고]'생계비 지원 거부됐습니다'달랑 문자 한 통?


※본 글은 난민인권센터에서 기고한 글로 오마이뉴스 2016. 8. 18. 일자 기사에 게재되었습니다


'생계비 지원 거부됐습니다'달랑 문자 한 통?

법무부, 난민신청자에게 문자로 생계비 지급 거부 통보... 서울행정법원 "위법"

 


▲ 생계비거부통보 문자 법무부는 생계비 거부결정을 문자 한통으로 통보하고 있다.
ⓒ 난민인권센터


"귀하의 생계비 지원 신청은 거부되었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2015년 여름, 난민 A씨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난민인권센터를 찾아왔다. 당시 나도 임신 중이어서 우리는 서로 아기의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A씨는 난민인권센터를 방문하게 된 이유를 꺼냈다. 

A씨는 본국에서 정당 활동을 하다가 구금을 당하였고, 구금 상태에서 빠져나와 한국으로 탈출하였다. A씨는 한국에 왔을 당시 수중에 돈이 전혀 없었고, 본국의 가족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난민신청을 하였고, 난민신청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생계비신청을 했다. 

A씨는 법무부의 생계비 지원을 받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며 난민신청 결과를 기다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A씨에게는 달랑 한 통의 문자만이 날아왔다. "You are failed to receive the living expenses(귀하의 생계비 지원 신청은 거부되었습니다)."
 


생계비 지원신청서에 적힌 형식적인 질문지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 외에 법무부에서는 A씨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고, A씨에게 왜 생계비 지원이 거부되었는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A씨는 문자를 보여주며 자신은 임신한 상태이고, 취업도 법에서 금지하고 있어서 당장 생계가 위태로운데 어떻게 방법이 없느냐며 도움을 요청하였다. 

난민인권센터는 공익법센터 어필과 함께 법무부가 A씨의 생계비를 거부한 것에 대해 소송으로 다투기로 하였다. 임신한 여성이고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는 A씨에 대한 생계비 거부는 법무부의 재량권을 일탈하고 남용한 것이어서 위법하다는 점, 그리고 생계비 거부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위법하다는 점을 들어 서울행정법원에 소를 제기하였다. 

행정기관이 개인에 대하여 내리는 결정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행정기관의 공적인 결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질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이고, 또한 상대방인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절차는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하며, 외국인에 대한 공적인 결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행정절차법에서는 "외국인의 출입국∙난민 인정∙귀화∙국적회복에 관한 사항"을 행정절차법의 적용제외 대상으로 두고 있다. 이미 출입국관리법, 난민법 등 개별법에서 행정절차에 대해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어서 굳이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절차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입법자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위 행정절차법 적용제외 대상이 돼서 법무부 및 출입국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것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상황이 자꾸만 발생한다. 생계비 거부와 같이 당사자에게는 생존에 직결된 사항에 관한 통지를 한 통의 문자로 해결하듯,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필요한 절차를 무시하고 행정편의적으로 정책을 운용하면서 위 행정절차법의 적용제외 규정을 내세우는 것이다. 

외국인에 관한 행정기관의 행위는 모두 위 행정절차법의 적용이 제외된다는 것처럼 주장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의 권익에 중대한 침해를 가하는 결정에 있어서도 당연히 준수해야 할 절차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위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 

가령 난민법상 출입국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경우, 출입국은 정식의 난민심사로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아무런 결정에 관한 서류도 교부하지 않고 구두로 "당신의 난민신청은 거부되었으니, 당신이 타고 온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라"고 통보한다. 공항에 구금된 채로 입국도 못 하고, 공무원의 저 말 한마디를 듣고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난민신청자에 대한 생계비지원 여부 결정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내가 왜 이 생계비 지원이 절실한지 아무런 구체적 조사도 하지 않고, 어떠한 기준으로 생계비 지원 대상자가 결정되는지 알 수도 없고, 왜 생계비 지원이 거부되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심지어 "생계비가 거부되었다"는 내용이 문서도 아닌 간단한 문자 한 통으로 도착한다. 

생계비 거부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위법하다는 주장에 대해 법무부에서는 이번 소송에서도 "생계비 거부 결정은 난민 인정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문자 통보가 위법하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임신한 여성이고 아무런 경제적 능력이 없는 A씨에 대한 생계비 거부는 법무부의 재량권을 일탈하고 남용한 것이어서 위법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A씨가 스스로 임신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생계비 지원신청서에는 임신 여부를 기재할 수 있는 질문 내용조차 없다. 

A씨는 생계비 지원신청서에 생활 수준을 묻는 질문에 대해 경제적 사정이 매우 좋지 않음을 밝혔고, 왜 생계비 지원신청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음을 밝혔다. 2장짜리 5개의 질문지에 A씨는 서툰 영어로 답을 하였다. 그것을 제출한 외에 아무런 추가적인 질문도 조사도 없었다. 그리고 A씨는 법무부로부터 위와 같은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생계비가 거부된 이유도 근거도, 소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언급도 일절 없다. 

A씨가 자신의 생계비 신청이 거부되었다는 결정을 어떻게 신뢰하고 납득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생계비 지원자를 결정하는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A씨뿐만이 아니다. 생계비 지원이 거부된 많은 신청자가 아무런 구체적 조사도 설명도 없는 그 같은 결정에 대해 수긍하고 납득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받지 못하여 이의제기하지 못하는 것이고, 또한 이의를 제기할 경우 혹여나 자신의 난민 인정 결정 과정에 무형의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운 마음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행정법원 "A씨에 대한 생계비거부 결정, 위법하다"

기사 관련 사진
▲ 미얀마 난민 입국 심사 '재정착 난민제도'에 따라 2015년 12월 23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미얀마인들이 입국심사를 받으며 손은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은 2016년 7월 7일 법무부의 A씨에 대한 생계비거부 결정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서울행정법원은 외국인의 난민 인정에 관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그 전부에 대하여 행정절차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성질상 행정절차를 거치기 곤란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처분이나 행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처분의 경우에만 행정절차법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난민신청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신청에 대한 결정"은 성질상 행정절차를 거치기 곤란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이거나 행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법원은 A씨가 받은 문자에는 "You are failed to receive the living expenses(귀하의 생계비 지원 신청은 거부되었습니다)"라고만 기재되어 그 근거와 이유가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A씨로서는 이 사건 통보서만으로는 어떠한 근거와 이유로 이 사건 통보가 이루어진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보아 법무부는 이유제시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았다.

또한 법무부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생계비 지원 신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고, 그에 관하여 A씨가 동의하였다는 자료도 없으며 생계비 지원 거부 결정이 신속히 처리할 필요가 있거나 사안이 경미한 경우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법무부는 문서제시의무도 위반하였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제시 의무 위반 및 문서제시 의무 위반이라는 절차적 하자만으로도 법무부의 생계비 거부 결정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위 판결은 2016년 8월 2일 확정되었다.  

난민신청자에 대한 생계비지원제도는 난민신청자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존엄과 가치 등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법무부가 마음대로 운영해도 좋을 시혜적인 조치가 아니다. 또한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법치국가라는 이름 아래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행정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생계비 지원 여부가 A씨와 같이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도착해 당장의 생계가 막막하여 하루하루가 고된 대부분의 난민신청자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는 그 무게감을 고려할 때, 법무부가 생계비 지원의 결정을 내리는 그 기준은 명확해야 하고, 결정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정된 예산으로 인하여 그것이 절실한 이들에 대해 불가피하게 생계비를 지원하지 못하게 되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라도, 당사자에게 생계비 지원이 불가한 이유가 설명되어야 하고 그 결정은 정식의 문서로 통지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당사자가 생계비 지원이 거부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납득할 수 없는 경우 불복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