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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2월 활동가 이야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보고 있자니 그 옛날 군대 생각이 납니다.

198711월 입대하여, 하루하루를 구타당하며 보냈던 시절그때만 해도 그랬었으니까요.

 

맞으면서 생각했습니다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구타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제가 내린 결론은 나는 때리지 말자’,

나에게 맞지 않은 내 후임은 구타당한 경험이 없어 그 후임을 때리지 않을 거고 이렇게 몇 기수가 지나면 적어도 우리 소대에서만큼은 구타가 없어지리라 믿었습니다.  너무 단순하고 순진한 생각이었지요.

후임들은 내가 때리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로부터 여전히 구타를 당하며 그 DNA를 물려받았고, 때리지 않는 제가 무서울(?)리가 없어 그냥 물러터진 사람 취급만 했었습니다.

 

선임들은 나에게 후임들 관리 똑바로 못한다고 날 구타하고, 내가 때리지 않아 악랄한 내 선임들이 기수를 뛰어 넘어 직접 후임들을 구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내가 때려버리는 게 더 나은 결정이 아닌지 고민하며 그 시절을 흘려 보냈습니다.

 

그리곤, 내가 고참이 되는 것처럼 내 후임들도 함께 고참이 되어 가면서 우리 내무반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어 갔습니다.

언제부턴가 제 후임들로부터 고참이 아닌 형 비슷한 대우를 받았고 내무반 생활은 군대가 아니라 형제들 모임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집합과 구타도 사라지고요.(제대한 후 후임들 만나보니 그래도 한번씩은 있었다고 합디다)       


제 어쭙짢은 군생활을 통해 배운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을 지켜나가지만 변화가 더디다고 포기하지는 말자. 

아무리 말로 설명하고 강조해도 그 위치에 서야만 비로소 실감하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어떤 변화는 세대를 거쳐서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오랜 기다림이 필수라는 점입니다.


'태양의 후예'를 보다가 뜬금없이 옛 군대생각도 나고, 최근 이러 저러한 고민때문인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습니다.


때아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주신 송혜교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난센과 함께한 지 어느덧 두 달이 흘렀습니다. 그간 치열하게 고민했고 온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지만 사실 그저 멍하니 두 눈을 뜬 채로 두 달이 지난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40시간을 일하게 되면서, 난민을 직접 만나면서, 본국 정황 조사를 하면서, 다른 활동가들을 보면서 등 알게 모르게 수 차례 머리를 얻어 맞았던 것 같습니다. 난민과 마주하면서 생각보다 내가 가진 편견과 선입견이 깊어 충격을 받기도 하고, 활동가들 간 개개인의 생각과 특성의 차이에 놀라기도 하며, 또 난민들 간의 다름에 놀라고, 이러한 차이에 기반해 스스로가 이들의 층위를 나누고 분류하고 있음을 깨닫고 또 놀라고, 법과 실제 삶과의 적지 않은 간극 때문에 놀라며, 이러한 법을 제정한 것도 사람이라는 생각에 다시 놀라고, 난민들 개개인의 삶의 행로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또 어이 없을 만큼 복잡하고 끔찍해서 놀라고, 이러한 실재를 기사에 적힌 건조한 글을 통해 그 단편 단편을 확인할 때 다시 놀라는 등 이런 갖가지 크고 작은 지점들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충격에 두 달 내내 머리가 멍해진 채로 지내온 것 같습니다.

 

요즈음 이상은씨의 노래를 자주 듣는데 성녀라는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저 버티는 건 정말 사는 걸까

멍하게 지내온 두 달간 버티고 버티고 버티며 살고 있는 이들의 삶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들기보다 그저 더 멍해져 왔던 것 같습니다. 그저 버티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이고 있는 짐, 그럼에도 이어져야 하는 삶을 생각하면 또 다시 멍해집니다




지난 1월 3명의 활동가가 새로 난센을 찾아왔습니다. 활동가가 바뀔 때마다 난센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는데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조금 지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사람들과 분위기에 빨리 적응이 된 것 같습니다. 붱붱과 단비를 예전부터 알았기 때문인지, 오후마다 사무실에 흐르는 재즈음악 때문인지, 아니면 붱붱이 내리는 커피향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것처럼 이들이 편안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최근 좋아하던 드라마가 종영했습니다. 그 드라마를 좋아했던 이유는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그런 로맨틱한 사랑이 아니라, 아픔과 상처와 슬픔과 삶을 온전히 끌어안고도 상대를 선택하는 그런 질척한 사랑을 말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만을 준 채 헤어졌던 주인공들은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어냅니다. 상대방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진흙탕에 내던지고, 끝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않은 채 버텨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들이 다시 되찾으려고 했던 것이 가족이고 사랑이이서, 새롭게 써내려가고자 했던 이야기가 정말로 좋은 이야기여서, 그래서 참 좋았습니다. 


빠르게 전개되는 드라마와는 달리 때로 제 삶은 느리고 더디며 제 자리에 고여 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의 흥분과 기대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만이 펼쳐진 것만 같다고만 느껴질 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껴안은 바다가 이 곳까지 저를 이끌어왔음을 믿으며,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부드럽고 잠잠하게 흘러가고 싶습니다. 



요즘 못다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한 공부인데,  활동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 뿐만 아니라 관점과 태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실천 현장과 마찬가지로 난센에서의 활동에는 활동가 스스로가 '도구'가 되어 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매개체'의 역할이 수반됩니다. 

활동의 대부분이 활동가 개인이 난민 개인을 만나 상호작용하며 '무엇인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긴급한 사례에 대한 개입이나 난민아동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등과 같은 직접적, 물적 지원의 활동도 있지만, 

난민분들과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통한)행위'로의 일종의 '간접'지원 활동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실제로 모든 분들께 자원을 연계하거나 지원할 수 있기에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난민인정심사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한 상담이나 서류 작업들이 갖는 활동의 특수성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개인이 난센의 문을 두드릴때에는 굉장히 복합적인 욕구들을 가지고 오시는데, 

이에 대응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하는 것, 관계를 맺어가는 것, '선택과 집중'을 잘 판단하고 활동해 나가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요즘 하는 공부는 이런 특수한 배경 속에서 활동의 관점을 키울 수 있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하며, 활동에 수반되는 자기 이해는 다양한 측면에서 활동의 질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라고 더욱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가진 선입견이나 편견, 경험 등이 난민분들과 만나고 서비스를 제공해나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제 3자가 되어 자각해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고유의 가치관과 자세, 마음가짐, 태도 등은 어떤 모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 

혹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난민이나 동료에게 자신의 문제를 투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한 것들이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자존감의 상태는 어떠한지, 요즘 결핍된 욕구는 없는지? 

또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 영향을 주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떠한지, 나만이 가진 신념과 가치는 어떤 빛깔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런 관점과 질문이 스스로를 더욱 이해하고 통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무래도 활동을 하다보면 가장 어려운 점들은 나와 너무 다른 난민분을 만났을때 인 것 같습니다.

 나에게 어려움을 주는 존재를 만났을때, 어떻게 스스로를 통제하고 그 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무비판'적인 수용을 '지속'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난민분과의 만남은 세상에 유일하고 독특한 우주를 항해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특별한 거울들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반추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긍정'하고 '설명'해내는 과정입니다. 

아직 참 부족하고 쉽지않지만, 참 감사하고 행복한 과정입니다.







안녕하세요. 단비에요.

후아. 벌써 새해의 두 달이 지났네요. 지난 달에 무엇을 했나하고 다이어리를 펴봅니다. 몇 주 전부터 쓰기 시작한 업무일지도 들추어 보고요. 한국에 난민분이 오시면 꼭 가는 장소를 방문하고 탐과 고니, 륭륭으로부터 틈틈이 교육도 받았습니다. 난민 케이스와 업무 배분도 받고요. 다른 인턴들과 함께 KOICA에서 진행하는 청년인턴 교육에 참가하고 컨설팅과 월례회의를 했어요. 컨설팅은 난센의 핵심목표와 사업계획을 토론하는 것이고 월례회의는 회의라고 부르긴 하는 데 모여서 자유롭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자리에요. 요즘 각자가 갖고 있는 고민이나 공유하고 싶은 이슈같은 것들 말이에요. 게다가 륭륭이 진행하는 재미난 륭륭타임까지! 정말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지난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올해 첫 난민인정을 받은 ㅁ씨의 난민인정 소식이에요. 저는 1년 전에 우연히 ㅁ씨를 알게 되었고 이번에 난센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는데 1월 말에 대법원 판결 선고를 앞두고 계신 상황이었어요. 예정된 선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결과가 나오지 않아 계속 마음을 졸였어요. 한시간쯤 지나자 나온 결과는 원고기각그리고 2원고승’.

 

그 순간 그녀가 입국 후 5년동안 겪었을 일들,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한국에서의 불안정한 체류와 수입, 편견과 차별의 시선 등 많은 것들이 한번에 떠오르면서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환호와 탄성

 

난민인정 이후에도 ㅁ씨가 가는 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이 일이 그녀의 삶에서 긍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평온한 일상을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월에 작성한 새로운 활동가 소개 글 내용에서 이어집니다)

제가 난센에 돌아오고 싶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넓은 창문을 통해 햇빛이 잘 들어오는 사무실, 날씨에 따라 파란 하늘과 눈바람도 바라 볼 수 있으며, 먼 산으로 넘어가는 일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서울혁신센터 안에 위치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빈번하고 1층에 위치한 널찍한 공유 공간이 딱 마음에 듭니다. 새로운 난센의 환경 덕분에 이 곳에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은 종종 사무실을 방문할 때, 그리고 2016년 업무를 시작하면서 발견한 것들이지만 실제적인 이유로는 2014년 난센을 떠난 이후 떠올랐던 단어들 때문입니다. 

두 가지로 꼽자면 ‘빚’과 ‘웃음’ 입니다.

 

2014년 2월 사무실을 떠나며 본래 준비하려던 것에 열중하기 위해 난센에 대한 미련과 걱정을 훌훌 털어버렸지만 괜시리 빚 진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주요한 업무에서 변두리로 벗어나려는 기지와 맡은 업무에서 발생하는 실수에 대한 면죄부로 ‘인턴’만이 가진 기회를 호시탐탐 사용했었고 그 안에 제 자신의 역할을 제한해 버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빚’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비생산적임에도 본래 저의 성향 상 ‘빚진 자’의 마음으로 ‘빚’을 갚아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종종 빠지곤 합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기회를 누리게 해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갚으려 더 ‘착한’ 아들로써 살아가려고 노력했고 큰 난관 없이 종종 노력한 것 이상의 결과(?)를 허락해 준 세상에 대한 보답으로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려고 고민했었습니다. 이렇듯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게 해준 난센에게도 을 느끼는 것은 저에게 과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6년 계획을 세우려 할 때, 난센이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는 이런 ‘빚’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여러 사람의 ‘웃음’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슬픔을 기억에서 제외 하려는 메커니즘 때문에 웃었던 기억이 상대적으로 많이 떠오르는 것을 어찌 못하겠지만 이 ‘웃음’은 제가 아는 일반적인 웃음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방송인 김제동의 웃음에 대한 가치관을 빌려서 설명해 보자면, 그는 사회 문제의 가장 큰 요인은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웃음의 기초 작업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작업은 상대방의 환경을 짚어보고 그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고통이나 기쁨을 상상하는 능력에서 시작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새로운 발상이 일어날 때 웃음이 터진다는 것입니다. 

난센에서는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것(불확실)에서 새로운 발상이 가능했고 그것은 수시로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게 하였습니다. 항상 웃을 수는 없었지만 종종 나를 웃게 했고 함께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안도의 웃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진지한 ‘웃음’이외에도 난센에는 헤픈 웃음을 비롯한 다양한 웃음이 있었습니다. 

그러하듯 2016년에도 '웃음'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2016년부터 1년동안 서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독립하고 싶은 마음과 통근 거리가 약간 멀다는 이유로 사무실에서 지하철로 15분정도 떨어진 곳에 원룸을 구했습니다. 베란다를 가진 유일한 원룸이면서 그 공간이 넓은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원룸에 베란다가 없는 이유를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차디찬 바람에 첫 날 밤을 보냈습니다. 보일러를 틀어도 막을 수 없는 추위인 것 같아 뾱뾱이와 틈새막이를 설치했는데 그것도 별 도움이 안되었습니다매일 보일러를 틀어놓는다면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는 소리에 온풍기를 구입했습니다

나름 나아졌지만 이제는 전기비가 많이 나올까 걱정이 됩니다역시 집 만한 곳은 없습니다.

 

저는 새로운 곳에서 옴겨가면 먼저 인근을 탐방합니다. 주민들이 찾는 인근 맛집은 무엇이 있는지, 좋은 분위기에 편하면서 싼 가격에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카페는 어디에 있는지, 서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주민 시설은 무엇이 있는지 등등, 시간이 날 때마다 돌아다니면서 인근 지리를 익혀갑니다. 주민센터에 들려 전입신고를 했습니다. 주민등록증 뒤에는 서울시 주소가 붙여져 있었고, 예비군 전입 소식을 이메일로 받고 나니 비로소 나도 서울 시민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주거 상태까지 변경하게 되니 뭔가 새롭다는 기분과 생소한 기분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기분을 더욱 만끽하기 위해 자취집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구입했습니다.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작은 책장과 스탠드를 구입했고, 여러 주방용품을 구입했습니다. 자취를 시작한지 벌써 한 달 반이 지났습니다. 

구입한 냄비와 후라이팬은 아직까지 포장된 채로 남겨져 있긴 하지만 나름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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