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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12월 활동가이야기



 

폭풍 같은 2015년이 지나갔습니다.

벌써 난센에서 활동한지 4년이 다 되어 갑니다.

늘어가는 활동 일 수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일기장에 쌓여 갑니다.

늘 찾아오는 이도, 사건사고도 잦은 난센

요즘은 업무량이 많아서 하루하루를 분초를 가르며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대전환 컨설팅과 후원의 밤 행사 등도 진행했었고,

올 하반기는 특히 난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난센의 문을 두드려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인력의 한계로 모든 분들을 다 제대로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이 자리를 빌어 전하고 싶습니다.

 

올 한해 개인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힘든 일들이 잦았던 해였다고 평가합니다.

어려운 과정을 관통하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처절히 느꼈던 만큼,

난센을 지지하고 계신 분들의 보이지 않는 사랑과

난센의 일상을 함께 살아내어 주시는 활동가, 난민 분들께 깊은 감사를 느낄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여전히 죄송합니다. 요청하신 부분에 대한 지원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전화통화들로 한 주를 시작하지만,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고, 저를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저는 행복한 놈인 것 같아요.

 

아직도 난센에 남아있을 것이냐 물어보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글쎄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시간들을 늘 마지막처럼 살아내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쌓여가는 연차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것 같은 마음에 이따금 불안감이 찾아올 때면, 난센을 통해 만났던 얼굴들을 떠올립니다. 비록 성장하지 못했더라도 그 얼굴들이 제 삶에 살아 있으니 후회가 없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난센은 이었지만, 지금은 선물이예요.

수십 번 넘어져도 함께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곁에 있으니까요.

지금 바로 곁에 없어도, 난센을 통해 만났던 분들이 제게는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몇몇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보다 많은 활동가들이 활동과 일상의 조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을 보고 다니는 직장은 아니지만, 활동이 삶의 전부는 될 수 없으니, 어떻게 활동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야근을 하고, 잠도 적게 자고, 퇴근 후에도 활동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활동가들을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마음이 지치고 몸이 지치면서,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모습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퇴근을 한 후 운동을 하고,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불광으로 이사를 하고 왕복 세시간씩 통근을 하게 된 후에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가 벅차졌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자는 것 외엔 할 수가 없었고, 끊었던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다른 활동가들을 보면 ‘나는 활동가라는 직업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걸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부끄러움과 죄책감 속에서 “하고 싶어, 해야 해,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저런 글들을 살펴보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활동가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그런 활동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한국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다시 활동가의 시대가 필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런 활동을 담당할 활동가가 있을까? 자기 사업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의 전체적인 상황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간파하고 이를 활동으로 만들 사람이 길러지고 있나? 실무자가 아니라 활동가로서 세상을 보고 시민과 손을 잡을 사람들이 성장하고 있나? 활동연차나 지적인 권위가 아니라 치열한 소통과 따뜻한 공감으로 자신의 지평을 열어갈 사람들이 성장하고 있나? 아직까지는 이런 물음만 생긴다. 답은 잘 읽히지 않는다.

<하승우, 활동가는 보이지 않고 실무자로 버티는 운동? 中>

 

사회의 전체적인 상황과 구조적인 문제점을 간파하고 이를 활동으로 만드는 것, 실무자가 아니라 활동가로서 세상을 보고 시민과 손을 잡는 것, 저는 그러한 역량도, 의지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과로사회의 저자인 김영선 교수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장시간노동에서 자유를 획득할 때 “가족과 지역사회와 정치,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을 시간, 상상하고 연대하고 사랑할 시간”이 생긴다고 합니다.

 

저는 좋은 활동가가 되고 싶습니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곳이 난민도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가족과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제 자신과 관계맺고, 상상하고 연대하고 사랑하며 성장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보다는 걸음이 느린 제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느리고, 깊게, 함께 오래 가는 활동가이고 싶습니다. 




수염을 깎았습니다.


“머더러 지르냐? 거 깎어버려라.”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지 100여일 만에야 아버지로부터 한소리 듣고서 바로 깎았습니다.


제 수염에 대해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봤지만

늙어 보인다는 말보다 ‘운동권’ ‘투사’ 같다는 말을 압도적으로 많이 들었습니다.


1950년대 프랑스에서 저항의 표시로 수염을 기른 비트족에 빗대어 ‘인권’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제 직업과 연관시키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제 수염이 부정적인 강성이미지를 증폭시킨다는 조언이었습니다.


난 그저 부풀어 오른 볼살을 가리기 위해 수염을 기른 것뿐인데 말입니다.


심지어 지난 연말 모임에서 30여년 만에 만난 친구는 다짜고짜

“너 요즘 사람들 안 만나냐? 너 사람들 만나 후원받아야 하는 직업이잖아. 그러려면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데. 너 앞니 벌어진 것도 교정해야겠다.”


허물없는 친구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수염을 투사와 강성 이미지로 바라봄에 진짜 ‘저항’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개인의 취향이 난센의 이미지나 후원에 영향을 끼친다면 이를 고수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지신 아버지께서 적절한 시기에 말씀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고민은 해결되었습니다.


수염도 깎았으니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난센 후원요청을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