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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고] 준비 없이 맞이한 재정착 난민들

천신만고 끝 왔는데 한국 떠나고 싶다?

[주장] '재정착 난민 시범사업'으로 23일 미얀마 난민 첫 입국, 정착 장기 지원 계획 준비해야

15.12.23 14:40l 최종 업데이트 15.12.23 15:00l 유은지(refucenter)

            

준비 없이 맞이한 재정착 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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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난민 입국 심사 '재정착 난민제도'에 따라 23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미얀마인들이 입국심사를 받으며 손은 흔들고 있다. 이들은 입국 후 난민인정자 지위를 부여받고 국내에서 거주자격(F-2) 비자로 체류한다. 초기 6∼12개월간은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머물며 한국어, 기초 법질서 교육 등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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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미얀마 난민 네 가족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자국 군부의 탄압으로 인해 태국 난민캠프에 머물던 소수민족 출신 난민들은 우리나라 '재정착 난민 제도 시범사업'의 첫 대상이다.

재정착 난민제도란 비호를 요청한 국가에서 영주권을 부여해주기로 한 제3국으로 난민을 이주시키는 제도다. 본국 귀환이 불가능하고 비호 신청국에서도 정착할 수 없는 난민들에게는 '제3국으로의 재정착'이 유일한 희망이다.

2014년 말 통계로 1950만 명에 달하는 세계 난민 대부분은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유엔 난민기구는 국제사회를 향해 책임 분담을 요청하며 재정착 난민 수용을 촉구해왔다. 현재 미국·호주·캐나다 등 28개국에서 재정착제도를 시행 중이며, 2014년에 15만 명의 난민이 제3국에 재정착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민국은 지난 2013년 7월에 재정착 난민제도를 도입했으며, 올해부터 3년간 매년 30명 이내의 재정착 난민을 시범적으로 수용할 예정이다. 이번 미얀마 난민들의 첫 입국과 함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9번째, 아시아에서 2번째로 재정착 난민제도 시행국이 되었다.

아시아 첫 '재정착 난민' 국가, 일본의 시행착오

아시아에서 최초로 재정착 난민을 받아들인 국가는 일본이다. 2010년에 시범 사업을 시작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일본은 지난 5년간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2012년에는 일본에 재정착을 지원하는 난민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2010년에 태국 메라 캠프에 있던 미얀마 난민 30명이 일본에 입국했다. 그들은 난민지원본부에서 초기 언어교육과 적응교육을 받고 치바 현과 미에 현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당시 입국한 난민 대부분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저소득 노동자로 전락했다. 구조적인 지원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장 일상 생활을 누리기에 일본어 소통 능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난민지원본부에서 제공한 6개월의 교육 외에는 지속해서 일어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또한 높은 주거비로 인해 외곽에 집을 구했고, 정착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고립되었다.

정부와 지자체, 비정부기구의 연계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역사회와 지역에서 난민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을 대상으로 한 정부 지원이 전혀 없었다. 재정착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개별적 접근을 통해 해결될 뿐, 지역사회의 지원을 체계화할 해결책은 강구되지 않았다.

유엔난민기구는 2013년 발간한 '일본의 재정착 난민 시행 평가보고서'에서 "일본에 재정착난민의 자립을 장려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지역사회, 비정부기구를 포함한 시민사회가 난민들과 함께 파트너를 이루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유명무실한 재정착 실무협의체

이번에 재정착 난민을 받아들이기까지 정부의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법무부는 재정착 난민 제도 도입을 추진하면서 난민의 정착 지원 인프라를 구축하려고 지난 1월 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 정부 국제기구, 민간단체 등의 협업을 통해 재정착 난민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정부기관 중에서 법무부·외교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가 참여했고 지자체로는 경기도가 포함됐다. 대한적십자사·유엔난민기구·국제이주기구·(사)피난처·지구촌사랑나눔·공익법센터 어필은 국제기구와 NGO를 대표하여 참여했다.

그러나 정부, 국제기구, 민간단체의 협업을 통한 인프라 구축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올해 실무협의체는 1월과 12월 단 2번밖에 소집되지 않았다. 지난 8일 재정착 난민 입국을 직전에 두고 실무협의체가 열렸지만 추진 상황을 설명하고 안건논의를 하기까지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자체를 대표하여 협의체에 포함되었던 경기도는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중앙정부의 지원금이 부재한 상황에서 지자체와 법무부의 협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장기 정착을 대비한 지원 이루어져야

재정착 난민들의 초기 정착 지원은 영종도 출입국외국인 지원센터에서 6~12개월간 이루어진다. 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수한 난민들은 본인의 선호도에 따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로 보내진다. 이들은 난민 인정자와 같은 거주자격(F-2) 비자를 부여받는다.

2014년 2월에 설립된 출입국·외국인 지원센터는 현재 난민 신청자를 대상으로 숙식과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어 교육과 문화·사회 교육 등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교육 수준 및 문화적 배경이 고려되지 않으며 모국어로 교육이 제공되지 않아 교육의 효과성이 낮다. 주로 이론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실질적인 체험학습은 부족하다.

또한 지원센터가 고립된 장소에 있어서 지역사회로의 접근성도 좋지 않다. 미얀마 난민 출신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인권활동가 소모뚜씨는 "외곽에 있는 것보다 공동체 사람들과 같이 살면 더 빨리 배울 것이다. 떨어져 살게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본다. 같은 소수민족 공동체에서도 관심을 두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동유럽 국가에서도 난민지원센터를 통해 초기 언어교육 및 정착교육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센터가 시내에 있어서 난민들이 재정착 국가의 사회와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다. 교육 내용도 비정부기구와 지자체의 협력을 통해 구성된다. 센터 퇴소 후에도 난민들은 관련 비정부기구와 지자체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국제이주기구(IOM) 서울사무소에서는 지난 8월에 '재정착 난민 제도 도입 및 사회정착 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위 연구 보고서에서는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 퇴소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체험기회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자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자체 및 비정부기구와 연계하고 지원 기반이 마련된 후에는 센터 거주 기간을 최소화할 것을 제언하고 있다.

정부 부처, 지자체, NGO와의 유기적 협력은 필수

'난민 재정착'은 '이주민의 사회통합'이라는 복합적 관점에서 시행되는 제도다. 이에는 취업, 복지, 주거 등과 관련된 정책을 시행하는 다양한 정부 부처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난민법 제30조 2항에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난민의 처우에 관한 정책의 수립·시행, 관계 법령의 정비, 관계 부처 등에 대한 지원과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IOM 보고서는 기존에 포함된 정부부처뿐 아니라 이미 다양한 이주자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해 온 부처들과의 추가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여성가족부는 난민 가정의 재정착에 이바지할 수 있고, 교육부는 자녀들의 학교생활 및 적응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센터 입소 직후부터 퇴소 후 지역사회 정착까지 NGO를 통한 지속적인 관리도 필요하다. NGO의 경험 및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회적응 및 자립을 지원한다면 절감된 비용으로 극대화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재정착 난민들을 위한 정착체계 보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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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 촬영하는 미얀마 난민 '재정착 난민제도'에 따라 23일 오전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미얀마인들이 입국심사장 앞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입국 후 난민인정자 지위를 부여받고 국내에서 거주자격(F-2) 비자로 체류한다. 초기 6∼12개월간은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서 머물며 한국어, 기초 법질서 교육 등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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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착 난민이 새로운 사회에 정착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넘어 자국민과 유사한 수준의 시민, 정치, 경제 및 사회적 권리를 누리고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착 난민과 수용국 모두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실무협의체를 제대로 가동해 지자체 및 NGO와의 협력을 활성화해야 한다. 출입국 외국인 지원센터의 지역적 고립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학습의 보완도 필요하다.

미얀마 커뮤니티와의 교류를 통해 지지기반을 형성한다면 퇴소 후 지역 정착에 이르기까지 장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속적인 한국어 교육을 위해 NGO에서 실시하는 한국어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여성가족부의 방문사업교육,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의 다문화가족 교육 등을 연계하는 방안도 있다.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은 "올해 만난 난민 인정자 중 8명이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은 난민들에게 살기 힘든 곳이다. 한국어를 못하면 직업을 찾을 수도 없다. 재정착 난민이 들어온다는 것만 발표했지 어떻게 지원할지는 구체적인 얘기가 없다. 난민을 몇 명 데려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착 지원을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