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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2월 활동가 이야기








난센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어 있던 A씨의 보호일시해제 기간 3개월이 만료되었습니다. 작년 말경 A씨는 B병이 의심되었고, 보호소 내에서 감당이 어려워 B병의 확인을 위해 보호(구금)를 일시적으로 해제하였습니다.

 

A씨는 보호일시해제가 된 후 B병의 검진을 받았습니다. B병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정밀한 검사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검진결과 B병이 나타나지는 않았고 다만 그에 이르지 않는 질병들은 발견되었습니다.

 

보호일시해제 기간이 만료되는 마지막 날, A씨를 만났습니다. A씨는 "나는 여전히 매우 아프고 치료와 안정이 필요한 사람이다. 절대 보호소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였습니다. A씨와 모조와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고, 담당자와 면담을 나누었습니다. 다만 B병 검진에 대한 최종적인 진단서 발급이 다음 날에 발급 예정이어서 그 날 바로 가타부타 결정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A씨와 우리는 A씨가 여전히 치료가 필요함을 어필하면서 보호일시해제 기간을 적어도 한 번은 더 연장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담당자는 확실한 대답을 피하며, 보호일시해제 3개월 충분하지 않았냐. 보호소에 들어가시면 된다. 하였고, 우리는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고, 보호소에서는 그러기 어려운 상황임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담당자는 그럼 '얼마나 더 연장을 희망하냐'는 둥 얼핏 연장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느껴진 말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B병에 대한 진단서가 없다 하니 주말 지나고 진단서를 가지고 다시 방문하라 하였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뭔가 확실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으면서도, 다른 출입국 사범과 담당자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느낌과 사뭇 달랐던 나긋나긋한 말투나 태도, 그리고 A씨가 계속 매달 출석의무를 준수한 부분을 확인하고, '얼마나 더 연장을 희망하냐'는 등의 말을 한 것에 ' B병에 이르지 않더라도 치료가 필요하다거나 추가 검진이 필요하다는 진단서가 있다면 연장을 해줄 수도 있겠구나'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긴장하며 보호일시해제 기간 마지막인 그곳을 방문한 날 일단 최종판단을 피한 것에 안심을 하였던 것일까요. 괜한 기대감을 가지고 그곳을 나와 밥을 먹으며 A씨에게 담당자의 말을 한국어로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말이 지난 다음 날, 오후에 다시 A씨와 함께 출입국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전에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오후에 출장이 있어서 진단서를 가지고 얼른 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약간의 불안감도 있었지만, 담당자에게 다시 물었고, 담당자는 명절이 다가와서 얼른 처리가 필요하다는 둥, A씨가 직접 와서 제출해도 된다는 둥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에 또 기대감을 품고 담당자에게 전화로 "연장해 주시는 거죠"하며 물었고, 담당자는 말끝을 흐리며 진단서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난센에서는 한참 멀었고, A씨는 그 출입국 부근에서 임시로 거주하고 있어 A씨께 직접 진단서를 가지고 담당자를 찾아가시도록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모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A씨가 보호소로 인계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리고 A씨한테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담당자의 태도에서 보호일시해제를 연장해 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넘어) 약간의 확신을 하였던 터라, 출입국 담당자의 연락을 받고 A씨에게 출입국으로 가시도록 전달을 하면서 "보호일시해제가 연장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보호소에 갈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A씨는 스스로 이를 판단하셔야 하는 당사자이고, A씨에게 연장되실 것이다는 확신의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기간이 만료되던 날 (처음에는) 긴장한 상태로 담당자를 만나고, (만난 후에는) 훨씬 편안해진 모습으로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웃으며 헤어진 그 태도와 그 느낌에서 그 분은 분명 한결 마음을 놓았을 것입니다.

 

이성을 찾고 모조와 얘기하고, 김형에게 들은 조언은, A씨가 B병의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어서 객관적으로 처음 보호일시해제를 받을 때의 사유는 이제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정에 수긍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A씨 조력자를 자처한 상황에서 보호일시해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능력은 없더라도,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 역할이었습니다. A씨의 당장의 분노를, 힘듦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일관되게 '혹시 연장이 안되어 보호소로 돌아가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 마음의 준비와, 생활의 정리를 하실 수 있도록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참 씁쓸하고 부끄럽고 속상했습니다. 고민이 되었던 터라 여기에 함께 공유해봅니다.










요즘은 좋지 않은 일들에 조금 무덤덤합니다. 병원비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누군가의 전화에도, 명절인데 혼자 회사기숙사를 지키고 있다는 누군가의 카톡에도 이제는 담담합니다. 미래가 없는 사람들의 삶이 이제는 익숙합니다. 노력은 해야겠지만 지금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선을 긋고, 거리를 두고, 거절하는 가운데 제 역할은 모든 것을 해주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활동가들이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의 저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예전보다 덜 긴장하게 되었고, 새로운 상황을 접하는데 익숙해졌습니다.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만 달라진 모습을 보며 무언가 변하고 있다고, 그러니 긴 호흡으로 이 곳에 머물며 조금씩 나아져보자고 생각합니다.


이번 달에는 해피빈을 통해 많은 분들이 분유기금 모금에 동참해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셨고, 몇 분은 분유를 보내주시겠다며 직접 연락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난민아기들을 위해 마음을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










가리키고자 하는 대상은 하나인데, 어떤 언어로 그 대상을 불러야할지 어려워하는, 이제 두 달을 난센에서 보낸 활동가입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그 대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수식하고, 설명하는지와 더불어 그 대상을 어떤 시선에서 봐야하는지 정리하기가 쉽지 않네요.

영어로는 분명히 '구금소' Detention Center 인데, '외국인 보호소'라니. 구금은 어디에 사람을 가둬서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잖아요. 한국 외국인 '보호소'의 경우 방과 복도로 연결되는 문을 잠그는 결정권이 방 안쪽에 있지 않고, 방 바깥쪽에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그 방에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그 문을 통해 안과 밖을 이동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면 신체의 물리적 자유를 제한하는 거잖아요. 왜 법무부는 분명히 영어로는 'detention center'라고 하면서, 한국어로는 '보호소'라고 하는거죠?

영종도 난민지원센터(가칭)였던 곳은 지금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라고 불리고 있는데요. 그곳에 머물면서 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난민신청자란 말이죠. 사실, 난민지원센터가 지금의 저런 이름으로 결정된 그 배경에는 이런저런 여러 관계 집단 중에서도 동네 주민을 의식해서 아닐까요? '난민' 관련 시설은 혐오시설인가요?

이렇게 언어의 정치적 사용?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런 언어의 장난?은 난센 외부에도 있지만 난센 내부에도 있어요. 쉽게는 면접 조서라고 했다가, 조서라고 하면 경찰 아저씨가 자꾸 떠올라서, '면담 기록부'라고도 했다가. 또 여기서는 1차 불허라고 했다가, 저기서는 난민불인정결정 이라고 했다가. 아무튼, 난센 서류를 엄청 더럽히고 있어요. '내방자', '본인', '난민분', '난민 신청자', '**씨'... 이 단어들이 사실은 한 명을 가리키고 있을 때도 있거든요. 사실, 이런 혼란은 저 개인의 문제죠. 그 중에서도 사실 '난민분'이 아직까지 제 머릿 속에서 자리를 못 잡고 있네요. 그냥 자꾸 '장애우'냐 '장애인'이냐 같아서요.










관계를 통한 회복을 꿈꾸는 난센. 그속에서 어떠한 관계의 형태가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건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봉사하려고 난센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욕구를 가지고 내방하시는 난민분들에게 그 욕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지원 절차와 내용의 전문성에 직결되는 제 자신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난민분들과의 관계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나는 전문가이고, 전문가 취급을 해주세요'라는 의미로의 전문가가 아니라 '우리가 동등하다는 것', '그것은 당신의 정당한 권리라는 것', 트라우마로 통제권을 상실한 이들에게 '당신은 충분히 당신의 삶에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소통하고 함께 해결해가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의 정립 후에도 저를 포함한 많은 활동가들이 관계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는 또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것 따위의 이야기들이 됩니다. 활동ㅡ또는 일ㅡ과 개인의 삶의 영역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 ㅡ또는 다른 기준에 의해서ㅡ 이에 대한 답이 활동가마다 천차만별인 것 같습니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업무시간 외의 시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관계를 지양해야 하는 것인지 또는 지향해야 하는 것인지.. 활동가들은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이러한 고민에 맞닥들이곤 합니다.


관계에 대한 고민의 부재는 때때로 밤 늦은시간에도 난민분이 활동가에게 전화해서 '비자'나 '난민신청'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 놓아 활동가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일로 이어지기도하고, 또 때로는 활동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난센으로 연락하라' 라며 매정하게 이야기하는 활동가의 이야기에 상처받은 난민분들이 생기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들을 지켜봐오며, 개인적으로는 활동가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관계에 대한 고민이 바탕이 되어야 섣부른 관계의 규명으로부터 오는 상처나 오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난센 안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을 활동가끼리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한 윤리강령 따위의 내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런 관계는 소수에 불과할 수 밖에 없고, 이는 욕구의 해결 주체를 활동가와 난민으로 더욱 제한하기 쉽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전문성'에도 역행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로서의 한계-제 개인의 역량과 업무 구조 등으로 인한 한계ㅡ와 과도기적 성찰의 산물(?)로서 현재 이어지고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은 그 관계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 분과의 관계를 이어오며 전문가로서 친구처럼 친근하게 난민분들을 난센에서 만나는 것과 난센 밖에서 일상의 영역을 공유하고 정말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관계의 형태가 회복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지는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아직까지 단 한사람과도 '우리가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무너지는 날들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언제부턴가 저를 Great라고 부르는 친구가 있습니다. 꽤 오랫동안 그는 저를 그렇게 불러 왔는데 최근에야 그 별명을 재조명하게 되었습니다.'Great'라는 별명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계의 간극을 극명히 드러내주는 메타포임을 느끼고 마음이 서늘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참 미안하고 힘들었던 지난 날들이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순진한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난민불인정결정 통지서를 받고 더이상 한국에서는 머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이 지구상에 갈 수 있는 모든 나라들을 뒤졌을 때.. 우리는 같은 인간이지만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세계에서 너무나 다른 존재로 취급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에 14시간, 주 7일을 일하도록 강요받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와 대조적으로 사무실에 편하게 앉아 있는 제 자신을 돌아보았던 순간 처럼. 한국의 구조가 그들의 권리를 다 보장해 주지 않고 있기에, 난센의 역할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 과정들이 참 지난해서.. 난센의 역할이 되려 더 'GREAT'해 진 것이 아닌지. GREAT라고 불리는 그 상황 자체가, 우리의 다름을 더욱 오해ㅡ우리는 똑같이 존엄한 존재이지만, 한국과 세계의 구조를 통과하는 당사자에게는 그 현실이 기가 막힐 지경이라, 사실 원래부터 당신의 권리였지만 마치 원래부터 당신의 권리가 아닌 것 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는 ,, 그래서 우리는 결국 똑같이 존엄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억압되는..ㅡ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우리의 동일한 존엄을 인정하고 일상 속에서 수 없이 침투하는 그런 오해들과 맞서 싸워 왔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스스로 그 간극을 방관했던 것은 아닌지.. 그러니 이제 그만 이렇게 부르는게 좋지 않겠는지.. 에 대해서 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오랜 이야기 끝에 결국 우리는 이 별명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의 긴 편지를 통해 그가 저를 생각하는 애정과 진심을 느꼈고 그 진심에 비하면 이 모든 설명들이 부질 없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이냐, 친구이냐와 같은 관계에 대한 정의나 고민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은 그냥 이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결국 우리는 해내고, 또 해낼 것이라고 함께 다짐했던 밤을 기억하면서... 











밤 12시라 글을 쓰기 살짝 두려운 시간이긴 하나, 내일까지 써야 되므로 이제 피할 수 없다.


 



 

고백하자면, 저번주는 무척 힘이 들었다. 케이스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것에 책임과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면서이다. 맡은 케이스에 대해서 일단 내가 1차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곤혹스러운 과정이었다. 내가 최종결정권자가 아니라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일단 내 선에서 최선을 다해 살피고 난 이후에 다른 활동가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읽고 또 읽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 보인다. 

 

난민 관련 일을 하면서 힘든 것은 협약에서 규정하는 난민 인정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난민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상기해야 하는 순간들일 것이다. (‘난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본국의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인물인지, 반정부 활동을 했었다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위치였는지, 본국으로 돌아가면 실제로 박해받을 위험이 얼마나 큰지 이런 부분들을 보고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따라 난민 지위를 결정한다는 것인데, (난민 입장에서는) 자신이 얼마나 혹독한 삶을 살았는지 증명해야 하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일을 하다보면 그 분들의 정서를 나도 모르게 머리로 이해하려고 할 때가 많다. 활동가가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해서 난민 신청자들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통념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 분들의 정서를 머리로 이해하려고 할 때 (이 방법 나름대로) 피해갈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것 같다.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부분과 감성을 사용해야 하는 부분을 구분해야 하는데, 그 스위치를 적절하게 바꾸면서 일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신청자 진술의 근거를 찾아야 할 땐 지체없이 이성을 발휘해서 객관적인 자료를 찾아야 하겠지만, 난민 분들을 대할 때에 그 분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있었나 생각이 든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