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하얗게 물들이던 눈이 내린 지난 금요일, 


낯선 이들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난센의 12월 월담을 찾아주셨습니다. 



지난 11월 말 난센의 류은지 활동가는 캐나다의 난민지원 단체를 방문했었는데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류은지 활동가가 본 경험을 통해 느꼈던 점을 이야기했고, 

특히 그 중 인상깊었던 로메로하우스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한 난민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었습니다. 


 



먼저 '커뮤니티 기반의 난민지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한 참석자 분이 "한국에서는 커뮤니티 베이스 난민 지원이라는 말을 뺐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캐나다에서의 경험을 언급하며 "캐나다의 사회적 환경과 인권감수성 등의 전반적인 토대와 한국의 토대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에서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는데, 그것는 캐나다에서 가능한 모습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자체가 힘들지 않을까? 오히려 주변의 난민들이 다른 종교나 다른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우리보다 더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커뮤니티 기반이라고 함은 대단히 실험적이다"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에 류은지 활동가는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가 있다고 하며 먼저 동질적인 민족으로 구성된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예로 한국의 줌머족 커뮤니티를 들며, 이 경우 집단 내에서 지지를 형성하며 한국에 정착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형태로는 지원단체가 좀 더 공동체적인 환경을 조성하여 난민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형태가 있는데, 오늘 논의는 이 두 번째 형태의 커뮤니티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제안했습니다. 

 

 





이어 한국 난민의 현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2014년 10월까지 한국에 총 2,176명이 난민 지위를 신청하였으나, 이에 비해 정부의 생계비 지원은 부족하고 취업허가에도 여러 문제점이 있습니다. 출입국지원센터를 제외하면 주거지원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고, 의료나 교육 지원도 전무합니다. 뿐만 아니라 난민을 지원하고 있는 NGO가 2-4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야기하였습니다. 

 

반면 캐나다의 경우 난민 신청을 할 경우 주거비를 보장받고 푸드, 퍼니처뱅크 등을 통해 음식과 가구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니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겨 의료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난민을 지원하는 NGO의 수가 많고, 재정착 난민의 경우 1년간 재정착 프로그램과 지원금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고, 언어 교육도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원은 정부가 아닌 지역 NGO를 통해 제공됩니다. 또한 캐나다 난민신청 구조를 설명하며, 최근 캐나다 난민신청의 절차적 문제에서 가장 대두되고 있는 안전한 국가 출신의 난민신청자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한편 류은지 활동가는 로메로 하우스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는데요, 로메로 하우스는 1992년에 설립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캐나다의 난민지원 단체이며, 이번 캐나다 출장에서 방문한 곳 중 하나였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로메로하우스에는 설립자 1명, 디렉터 1명, 인턴 7명이 있고, 4채의 집에 인턴들과 난민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로메로하우스에 거주하는 난민들의 정착에는 주변의 이웃들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로메로하우스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로메로하우스 방문기 보러가기!



이어 참석자들과 함께 로메로하우스의 커뮤니티 기반의 비전(Community-based vision)을 함께 읽어 내려갔습니다.



Community - based vision


1.우리는 로메로하우스에 찾아온 난민들이 깊은 의미에서 우리의 형제이고 자매라고 믿습니다. 개개인은 고유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무한한 가치가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류라는 대가족의 일부입니다. 이는 우리가 우리 삶의 문간에 찾아온 낯선 이들을 환영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때 낯선 이들이었던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될 것이라는,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우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로메로하우스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된다는 것은 서로를 존엄하게 하는 방식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행동하도록 돕는, 그런 종류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개개 난민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힘과 용기를 신뢰합니다. 우리는 각각의 사람들이 진실함, 선함 그리고 정의와 사랑을 원하고 있다는 믿음 위에서 행동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우리 내면에 있는 최선의 것을 의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심이 아닌 신뢰로 난민들을 맞아들입니다.

 

3. 우리는 각 난민의 온전함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난민신청절차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과거에 관해 말하기 원하는 것들을 우리에게 말할 그들의 권리를 존중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신뢰해야할 의무가 없습니다. 로메로하우스는 그들이 스스로를 설명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장소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난민들이 우리에게 말하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비밀과 비밀유지에 대한 권리를 존중합니다.

 

5. 우리는 난민들에게 또는 서로에게 판단하는 이들처럼 행동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사회에는 인간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판단하는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난민신청자들이 그들의 인생 중에서 굉장히 취약한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전에 가능했던 방식으로, 또는 미래에 가능할 방식으로 항상 반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가 좋은 이웃으로서 행동하지 않을 때 그들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몸을 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로메로 하우스의 일이 힘들고 심신을 지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서로의 마음이 약해진 순간에 서로를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과 확신이 있는 순간들을 기뻐합니다.

 

6. 우리는 난민들을 위한 우리의 일을 최선의 능력으로 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 문화에서, 능력은 종종 높은 급여와 연관됩니다. 우리는 가능한 가장 최선의 일을 하기로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급여를 받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 이상을 받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난민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그들이 스스로를 위해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난민들과 함께 하는 일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의 삶에 동등하게 관여하는 것입니다.

 

7. 우리는 어떤 것도 우리와 우리 이웃들 간의 관계를 망치지 않도록 단순하게 살기를 선택합니다.


8. 각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묻습니다. “좋은 이웃이라면 어떻게 할까?”, “가장 사랑으로 하는 반응이란 무엇일까?”

 

9. 우리는 로메로하우스에 있는 다른 종교, 문화 그리고 인종을 존중하기 원합니다. 사실 우리는 차이에 가치를 두는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축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같게되라고 요구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우리의 보살핌과 배려 안에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말보다는 삶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출처: http://romerohouse.org/index.php/our-vision/community-based-vision






로메로하우스가 처음부터 이웃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메로 하우스의 설립자인 메리조 레디(Mary Jo Leddy)의 저서인 'The Other Face of God'에는 지금과 같은 이웃 공동체가 형성되어온 과정이 쓰여져 있습니다. 설립 초기 로메로하우스는 4곳의 집 중 한 곳인 '완다하우스'의 차고를 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소로 바꾸려 했습니다. 그러나 용도변경신청 과정에서 마을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용도를 변경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이웃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10년 후에는 완다하우스가 있는 완다 로드에서 축제를 개최하고 이웃들로부터 많은 호의를 얻게 됩니다. 이 축제는 지금도 매년 완다로드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웃을 형성한 과정이 기술된 후,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집니다.



 Mary Jo Leddy (2011) The Other Face of God: When the Stranger Calls Us Home


공동체 개발에 관한 많은 책이 있고, 나는 그들 중 몇몇을 읽어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보통 그런 책에 묘사된 방식으로 공동체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공동체 개발에 관한 글에는 마치 어떤 장소에 가고, 이슈를 확인하고 나면, 그 주변에 이웃을 조직화할 수 있는 것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기에는 1년이나 2년 정도가 소요된다.

 

잘못되어도 너무나 잘못되었다. 이웃을 형성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20년 아니 그 이상이 걸린다. 매일 매일이 걸린다. 마치 정원처럼, 이웃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돌봐져야 한다. 뿌려져야할 씨앗이 있고, 물을 주어야 할 작은 식물들이 있다. 그리고 당연히, 매일매일 뽑아야 할 잡초들이 있고, 좋은 것들을 압도하기 전에 해결해야할 작은 문제들이 있다. 이는 변변치 않은 일들이고, 결코 끝나지 않는다. 아주 약한 폭풍이 불어와, 모든 사랑스러움을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있다.

 

이러한 거리 파티와 많은 다른 모임들을 통해서, 이웃들은 로메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이웃들은 난민들이 가져온 엄청난 재능과 선물을 깨닫게 되었다. 난민들은 더 이상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고, 이웃의 자산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웃들은 난민들을 위한 첫 일자리를 찾아주기 시작했다. 그들이 장기적인 일자리를 얻는데 시작점이 되는 경험을 얻도록, 중대한 한 걸음을 내딛게 해준 것이다. 어떤 이웃들은 새로 온 이들을 위해 번역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난민들에게 식사를 하라고 초대하는 이웃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이웃들은 난민 아이가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초대는 어떠한 공식적인 정착 프로그램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달성했다. 난민들은 인간으로서 환영받는다고 느꼈고, 각각 이름과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이 곳에 살고, 집을 얻고,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느꼈다. 나는 언제나 그들이 그러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한 단순한 초대가 만들어낸 변화 속에 담긴, 모든 세세한 것들과 즐거움에 대해 듣기 위해서 말이다.


난민들을 환영하기 위해서는 이웃이 필요하다.

(It Takes a Neighborhood to Welcome a Refugee)

 

우리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가혹하게 뿌리 뽑힌 사람들이 다시 정착하도록 돕는 데에 이웃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계획 없이 우리는 난민들을 환영하는 모델로 성장하게 되었다. 사회복지사들과 상담원들이 난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통의 기관모델과는 꽤나 다른 형태로 말이다. 우리에게는 고용된 상담원들이 없다; 우리에게는 관계를 맺고 있는 좋은 이웃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번역가가 없다; 우리에게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할 줄 아는 좋은 이웃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돈을 받고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다; 우리에게는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친구사귀기를 즐기는 이웃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난민들이 평범한 이웃주민들이 있는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곳을 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로메로 하우스를 집이라고 부르는 난민들과)과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 우리가 깨달은 사실은, 이런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정책들이 새로온 이들이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이었다. 납세자들은 정부에 돈을 내고 정부는 그들을 돕도록 사회복지사들에게 그 돈을 지급한다. 이 과정에서 납세자들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절대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 절대로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보지 못한다. 난민과 같은 사람들은 일반적인 거주지역으로부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쉼터에 배치된다. “우리그들사이에 있는, 빈민가와 외부인 출입제한 주택가 사이에 있는 거리는, 거대한 무관심이 되고, 사회적 긴장이 심한 시기에는 위험한 분열지점이 된다. 난민은 이름과 얼굴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슈문제로 남는다. 우리는 잘 알려진 아프리카의 속담[각주:1]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기를 배우고 있다. “난민을 환영하는 데에는 이웃이 필요하다” 이는 로메로 하우스의 새로운 금언이 되었고 우리는 좋은 이웃을 형성하는데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다. 우리는 건강하고, 안전하고 잘 기능하는 이웃을 조성하는 것이 난민들을 환영하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그러나 또한 좋은 이웃을 형성하는 데에 난민 자신들도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 명백해지고 있다. 이 거리에 있는 누군가가 이 난민들이 우리를 좋은 이웃으로 만들었다라고 표현했듯 말이다.

 

 

이웃을 부르려면 낯선 이가 필요하다.

(It Takes a Stranger to Summon a Neighborhood)

 

우리가 처음 이 지역으로 이사를 왔던 이유는, 주거비용이 싸고, 모스크가 주변에 있고, 병원, 그리고 고용센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 곳은 이름이 없는 이웃들의 지역이었다. 이 곳은 우리가 사라져버릴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였다. 우리가 살았던 거리에서, 서로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작은 지역에 난민들이 왔다는 사실은, 그들의 명백한 필요에 응답하도록 사람들을 불렀다: 그들은 겨울옷이 없었다; 그들은 병원에 데려가져야 했다; 그들은 슬퍼 보였다. 난민들은 선하고 품위있는 행동을 하도록 우리를 불렀다. 난민들에게 응답하면서 이웃들은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난민들은 우리 주변의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운에 주목했다. 물론 처음에 사람들을 모이게 한 것은 난민들이 위협을 제기한다고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사람들은 난민들의 중대한 필요에 함께 대응하기 위해 모였다.

이 과정에서 모두가 이겼다. 이웃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블록에 알콜중독인 아들을 둔 나이 많은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둘은 모두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식사배달 서비스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기술적으로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녀의 아들이 그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짐작하기로는 그녀를 위해 요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웃들이 그녀의 절망적인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교대로 음식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로메로 하우스는 그 모자를 위해 수년 동안 크리스마스 식사를 준비했다.


난민을 환영하기 위해서는 이웃이 필요하다; 이웃을 부르기 위해서는 낯선 이가 필요하다


이는 지금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이 곳은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곳에 아주 많은 애정을 품고 있다. Wendell Berry는 이러한 장소의 자비로운 불완전성에 대해 묘사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불완전하고 우유부단하지만, 해어진, 그리고 항상 해어질, 불완전한, 그러나 계속해서 묶고 있을 다양한 종류의 애정의 끈으로 서로를 묶고 있는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언제나 그 자체로 실망스럽고, 그 구성원들을 실망시키며, 분열을 억누르고 비열함을 완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언제나 실패하지만, 항상 선의를 향한 다소의 의지를 지키고 있다.”

  




이어 류은지 활동가는


1. 한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2. 우리가 생각하는 커뮤니티 기반의 난민지원이란?

 

위의 두 가지 질문을 참가자에게 던져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난주 금요일에 참석한 분들도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어주셨는데요~

지금부터는 12월 월담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당시의 대화록을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각주:2]



 





K: 캐나다에서는 최소한의 생계비, 주거비가 나오기 때문에 한국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지원비용이 나오는데도 난민들이 로메로하우스를 가는 이유는 정착하고 자립하는데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O: 저는 퀘백 몬트리올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난민들이 각자 지원금을 가지고 살고 싶은 곳에 사는데, 15년 전에는 충분히 그정도의 지원금이면 살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현재는 350불 정도가 주거비로 지원된다고 하셨는데, 2005년 까지 정말 안좋은 방이 350-400불 정도 였으니까... 지금은 살기 힘들 것 같아요.


Y: 캐나다에서 제가 월세 혼자 살았던 곳이 한 달에 700불이었어요


K: 이전에 비해 현재는 지원이 축소된 것으로 보여요. 그러나 한국과의 차이점은 캐나다는 모든 난민신청자에게 지원금을 주고 한국은 150명정도에게만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Y: 우선 한국은 집을 빌리는 문화가 캐나다랑 다른 것 같아요. 한국은 집을 빌리면 보증금이랑 월세가 필요한데, 난민들은 보증금이 없기 때문에 보증금 마련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되지요. 공장 기숙사에서 살지 않는 이상 보증금이 필요해요. 캐나다는 첫째 달과 마지막 달 살 것을 줘요. 즉 보증금이 없어도 집을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K: 캐나다는 푸드뱅크,퍼니처뱅크 같은 지원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집만 잘 해결 되면 생활에 문제가 없어요. 로메로 하우스에 있을 때에도 가구들이 가득 찬 거대한 창고에서 물건을 가지고 오곤 했었어요. 

 

S: 그럼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떤가요?


Y: 우리나라는 난민분들이 이태원재활용센터 같은데서 사고, 친구들한테 사거나..

 

L: 아까 우리나라는 2,200명 정도의 난민신청자가 있고 지원하는 기관이 2-4군데라고 했는데, 캐나다에는 신청자 몇 명 정도가 있고, 그들을 지원하는 기관이 얼마나 있나요? 

 

R: 2012년 통계에 따르면 총 23,056명이 신청했다고 해요. 난민신청해서 인정받은 사람은 8,578, 가족결합으로 인정된 사람 4,854 그리고 나머지 재정착 난민인데, 정부지원이 5,412명 이고 개인스폰서 4,212명이에요. 지원 기관에 관해서는 확인해보고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K: 캐나다의 경우 매년 난민 쿼터를 미리 정해 놓는데, 내년에는 25천명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요. 총 이민자의 10%를 난민으로 받고 있고, 항상 난민지원 단체들은 쿼터를 늘리자는 것에 대해서 첨예하게 싸우곤 합니다.


S: 아까 캐나다의 난민 인정 절차에 대한 부분을 더 여쭙고 싶어요.


R: 2012년에 C31이라고 해서 난민인정절차가 좀 더 빠르게 진행되도록 제도가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18-22개월이 걸리던 난민인정기간이 C31제도 도입 이후에는 3-5개월로 줄어들었고요. 이 변화과정에서 DCOs[각주:3]에 대해 많은 비판이 일고 있어요. 35개 국가가 난민을 주로 배출하지 않는 안전한 국가로 지정이 되었고 해당국가 출신자들은 30-45일 이내에 면담이 진행돼요. 이들은 취업신청에도 제한을 받고, 새로운 이의신청심사기관인 RAD에 이의신청을 할수도 없어요. 증거자료를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고요. 문제는 콜롬비아와 같이 실제로는 난민인정률이 충분이 높은 나라가 DCO에 포함돼 있어서 이러한 국가출신의 난민신청자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O: 프랑스도 priority country가 있는데, 모든 국가가 28일 이내에 증거자료나 신청서를 다 써서 내야해요, 그런데 프랑스에 오자마자 등록하고 28일 이내에 한다는 것이 난민분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에요

한편, 캐나다와 우리나라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캐나다에서 이웃주민들이 난민을 초대하여 같이 밥을 먹었던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집에 초대해서 밥먹는 문화가 없으니까요

 

S: 다문화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통합'이라고 하면 정서적 통합이 되어야 완전한 통합이라고 해요. 그 통합까지 가려면 인간적인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죠. 생활 속에서 서로를 접하고 관계가 형성되어야 정서적 통합까지 된다고 생각하는데, 커뮤니티 베이스는 정부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역사회, 민간단체, 사회단체가 만들어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의 경우 사회통합 전달체계를 지자체로 많이 내려놓겠다고 이야기하는 추세에요. 한국정부는 손도 안댔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난민에 대한 정책도 정부차원에서 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K: 시스템 체계 내에서의 '커뮤니티'에 대한 상상은 불가능하죠. 시스템 밖에서 어떤 자조모임 같은 형식으로 접근해야 해요. 그것에 대한 근본은 생계에 대한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요. 동등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결국 생계의 보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에요. 로메로하우스에서는 난민이 인턴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없거든요. 현재는 캐나다 정부 지원 금액이 외부에서 주거를 마련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제가 있을 때만해도 지원이 충분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평등한 관계가 가능했고요. 이것은 제도적 문제이므로 생계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O: 1번 만나고 2번 만나고 하며 관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데.. 또 동등한 관계가 되어야 지속적인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R: 로메로하우스에 사는 난민들은 매달 정부로부터 주거비를 받고, 이 금액을 로메로하우스에 지불하고 있어요. 그 외 로메로하우스의 운영비는 기부금을 통해 마련되고 있고요. 로메로하우스는 독립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 아니라 난민들과도 동등한 관계를 맺고 있죠.

  


 


 

S: 로메로 하우스에 난민아동을 위한 교육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기존 공교육 시스템이 아닌 난민 아동만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은데..


R: 로메로하우스에는 키즈클럽엄마들을 위한 교육 등이 있었어요. 체계적 교육시스템이라기 보다는 예술프로그램 같은 것이었고요. 엄마들을 위한 교육이 있기는 하지만, 참여자들이 실제로 교육에 참가할 시간을 내기 어려워 활성화 되기 어렵다고 들었어요.

 

L: 공동체 기반의 난민지원의 핵심은 같이 산다는 것인데, 난센에서도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면 서로 감정이 생기거나 하는 것 같아요. 그러한 갈등이 생길 때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화해하는 자리 등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특히 그곳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서 살기에 다양한 갈등이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물건이 없어졌을 때 서로를 의심할 수도있고, 사소한 문화 차이로도 기분이 얹짢아 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곳에서는 이와 같은 갈등에 어떻게 대응하나요?

 

R: 정기적으로 스텝들과 인턴들이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들었어요.


S: 그것은 로메로하우스 스텝들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죠?


R: 네

 

K: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아요. 제가 로메로에 있었을 때는 아침에 9시부터 업무 시작 시간이었는데 845분 전부터 종교적인 나눔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또 수요일 저녁마다 외부 강사진이 와서,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난민과의 관계도 문제가 있었지요. 그 안에서도 인종차별이 있고 물건도 없어지고 많은 일들이 있어요. 서로 욕도 하구요. 사람사는 것이 똑같아요.

 

O: 로메로 하우스의 설명을 들어보니 사무실이면서도, 같이 사는 것이 단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K: 로메로에서 인턴을 할 때 적은 급여로 사놓은 음식을 다른 사람들이 먹어버리거나 하는 일로 갈등이 있기도 했어요. 

 

J: 피난처에서 쉼터가 있는데, 저희는 오전에는 함께 있고 저녁에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데 24시간을 같이 살면 정말 애증의 관계가 될 것 같아요


R: 로메로의 경우 인턴들 각자 자기 방이 있고 난민들과는 층이 분리되어 있어서, 원한다면 개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한 번은 로메로의 디렉터가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2층에 사는 몽골 아이가 계속 그 드라마를 볼 수 없도록 방해해서 결국 정말 보고 싶은 마지막 10분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같이 살면 티비 같은 것도 마음대로 못 보고, 개인시간을 갖지 못해서 힘들지 않은지 물었죠. 그녀는 "개인의 시간은 내가 확보할 수 있는 거고, 혼자만의 시간을 원했다면 나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있었을 거야. 나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거실에 나와서 티비를 본 거야." 라고 제게 말했죠.


K: 이 일 자체가 너무 힘들고 지치고 소모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종교적으로, 또 그 외에는 자신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또 다른 공동체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요. 또 적절한 휴식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로메로에 있을 때 한 달에 한 번씩 23일 정도의 시간을 무조건 내서 교외로 나가 쉬었었어요. 그냥 날 새면서 카드 놀이도하고, 티비 영화도 잔뜩 쌓아놓고 보고, 고기도 구워먹고, 카약을 타고 놀기도 하고.. 재충전,  쉼을 강조하죠.




 

Y: 같이 살 때엔 생활 룰이 있잖아요. 다른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는 일은 있지만,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생기고 그러면 이성친구를 초대 하고 싶고 그럴 것 같고.. 함께 사는 인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문화차이가 있으면 그런 부분이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또 같이 사는 사람들 안에서의 러브라인도 문제가 될 것 같고요

 

K인턴하고 난민하고 그런 적이 있었는데, 캐나다는 성적인 부분이 개방적이라서 문제가 되진 않았어요.


Y: 하지만 그것은 캐나다 사람들의 이야기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K: 로메로하우스는 대부분 가정 중심이었고, 독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거의 없었어요. 

 

O: 프랑스는 아동이 있으면 쉼터 지원에 우선순위로 고려가 되어요. 

 

K: 로메로도 그래서 가정 중심으로 받지 않았나 생각해요.

 







G: 다양한 나라 중에 캐나다에 굳이 간 이유가 있었나요? 캐나다가 우리나라가 선례로 배울 수 있는 케이스인가요? 한국은 지금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로메로 형태의 커뮤니티가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실효성을 가질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난민지원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인가요? 우리나라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현장에 있는 사람들로 부터 듣고 싶습니다.

 

R: 저도 한국과 캐나다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캐나다로부터 분명하게 배울 수 있는 부분은 정부의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죠. 한국은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있고 난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데 그 역할을 잘 이행하지 못하고 있어요. 난민 개인에 대해서도 출입국관리적인 관점으로 볼 뿐 함께 살아갈 사람들로는 대하지 않고 있고요. 또 다른 점은 캐나다에는 단체들이 많고, 개별 단체의 지원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었어요. CCR에 참가했을 때도 많은 단체들이 모여 실질적인 지원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어요. 한국과 굉장히 많은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에게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2-30년 정도 지나면 우리나라도 캐나다의 20분의 1 정도에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G: 역사적 맥락 등으로 이전에 우리나라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는 나라가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K: 한국은 특이한 나라에요. 동양에서 난민 받는 나라가 일본과 우리나라 밖에 없죠. 

 

Y: 그래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빠른 시일내에 이러한 시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요.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그 끈을 만들어 가는 것. 아마 로메로의 경우는 더 잘하려고 인턴들이 공동주거를 하는 것 같은데, 로메로 하우스처럼 같이 사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한국도 그런 시도들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어떤 동네에서 하냐가 중요하겠죠. 얼마전에도 나이드신 시민분들이 복지사와 함께 살겠다고 했었는데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아파트에 어린이집 들어가듯 이런 공동체들이 들어가면 집값 떨어진다고.. 동네분들이 와서 반대하고 흩어져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도 같이 산다고 로메로 하우스라고 이름을 달면 똑같은 반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로메로와는 다른 형태로,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창의적인 토착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K로메로 하우스랑 우리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부분은 같다고 생각해요.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일단 먹고 살 수 있어야 돼요. 이것이 얼마나 걸릴지는 결국 단체들이 얼마나 정부와 잘 싸워서 얼마나 빨리 도달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제 예상 기간은 5년이에요, 그러나 더 임박하게 올 수도 있을거에요. 그렇게 되면 지원금이 늘어남에 따라 수많은 단체들이 생겨나겠죠


Y: 미국처럼요


K: 네, 로메로 하우스처럼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결국 그 단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상상력에 달려있어요. 한국은 더 걸릴 거에요. 누가 되든지 그 부분을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고통스러운 과정을 참고 이겨내고 견뎌내야 해요. 그래야 그 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H: 저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캐나다에 거주했는데, 전체적으로 받은 인상은 굉장히 여유가 있다는 거였어요, 아까 Y씨의 말에 공감하는 점은 국가마다 가지고 있는 인프라라든지, 맥락이라든지 등에 따라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모델은 분명히 다른 형태일 거라는 거에요. 캐나다 같은 경우에는 이주 국가로서 이미 국가가 다문화를 토대로 하고 있고, 그 역사가 한국에 비해 길죠


저는 아시안이 잘 없는 서쪽 작은 마을에 있었는데, 그곳에 있으면서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stranger라는 부정적인 시선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그 곳에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 이미 뿌리가 내려져 있었죠. 대도시와 시골 도시의 차이가 분명 있을테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훨씬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나 태도가 열려있고 자연스러워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부럽고, 그 요인이 이것이 성공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해요


8년 동안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외국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2년 반 정도 있었는데, 한국은 너무 각박하다라는 느낌이 들어요. 삶이 너무 각박해요.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좋고, 친절하고, 한국사람들과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에너지, 잠재력이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한국 사회가 각박하고, 급박하게 돌아가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공기에서 느껴져요. 그럼에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를 잘 승화시켜서 한국의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요.



  


 

K: 결국 중요한 것은 상상력인 것 같아요. 일단 집구조 자체부터도 캐나다와 우리는 다르잖아요. 커뮤니티 기반으로 산다는 건 한국의 문화나 가옥 형태, 정서들이 얽힌 복합적인 문제이고, 결국 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달려있죠. 로메로 하우스가 20-30년 걸려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지만 우리는 40-50년이 걸릴 수도 있겠죠. 결국 누가 이것을 버티며 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O: 국내에 있는 난민분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K: 줌머분들처럼 모여사는 그룹으로는 콩고, 버마 커뮤니티가 있고, 그 외의 난민들은 안산, 시흥, 보산, 이태원 등지에서 흩어져 살고 있어요. 주로 일자리에 따라서 주거지가 달라지죠. 줌머분들처럼 이미 커뮤니티를 이루고 잘 사는 곳은 단체가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건드리는 것 자체가 범죄에 준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O: 난민분들에게 이웃과의 관계 등을 통한 정서적 지지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K: 아직도 많은 난민이 이웃이 없어요. 캐나다도 집값을 낼 돈이 난민들에게 부족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더 그렇겠죠. 

 

S: 한국인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의 문화가 그래도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난민이 제 옆집에 산다고 하면, 제도적 이슈나 사회적인 것을 떠나서 그냥 옆집에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도와줄 것 같거든요.

 

K: 그럼 S씨 집 주변에 난민들이 온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S: 저는 얼마 전부터 집 주변에서 아시아의 노동자들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처음에는 그들을 볼 때 무서웠었어요. 딸이 있으니까 조심해야겠다고도 생각했죠.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익숙해지더라고요. 사실 친해지거나, 서로에게 많이 노출되면 아무렇지도 않은 거였는데 말이에요. 어떤 모임이든지 그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O: 프랑스에 있을 때, 별거 아니지만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첫 걸음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난민 단체 자원봉사를 하면서 워낙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한 분의 이름을 물어보고, 그 다음부터 그 분의 이름을 불렀더니, 이름 하나를 불러주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어두웠던 표정과 몸짓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이러한 부분도 그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해요. 문제나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로 만나는 점에 있어서 말이에요

 

K: 저는 여섯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이 정말 불편해요. 연출이 되니까요. 저도 사무실에서 난민과 나누는 이야기와 사무실 바깥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어요. 한 번은 저희 집 근처에 묵고 계시는 난민분을 밤에 만나, 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그 분이 본국에서 가축을 쳤던 얘기들, 일상의 얘기들을 나누었죠. 그런 이야기들에는 삶의 이야기가 녹아 들어 있어요.




 


 

R: 정말로 동등하게 되려면 우리에게도  도움을 받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봐요. 로메로의 경우는 같이 살다보니 난민들에게 도움을 받을 기회가 있더라구요. 한 영국 출신의 인턴이 말하길, 인턴을 하기 위해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적응하는 게 낯설고 어려웠다고 해요. 그 때 그 친구가 자신이 담당하게 된 에리트리아 난민으로부터 많은 환대와 도움을 받았어요. 그 친구는 지금도 본인과 가장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그 분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제가 로메로에 머물 때 에리트리아 난민, 몽골 난민, 에티오피아 난민 등으로부터 음식 대접을 참 많이 받았어요. 갚을 수 없는 것들을 계속 받으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갚아야 하나' 라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난센에서 난민들을 만나면 저희는 항상 주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어요. 어떻게 하면 저희도 무언가를 받는 기회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되네요.

 

S: 결국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결론인데.. 그 과정이 참...


Y: 동생이랑도 같이 살기 힘든데.. 

 

K: 한국에서는 로메로하우스 같은 모델을 이루지 못 할 것 같아요. 설립자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한국적인 모델이 필요해요. 느슨한 공동체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한국에 있는 많은 공동체들이 느슨한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고요. 긴장감과 친밀함의 경계선, 그것이 중요할 테죠.

 

S: 우리나라 난민들의 생활이 평균 어느 정도인가요? 욤비씨 같은 케이스가 얼마나 되는 거죠?


K: 욤비씨 같은 케이스는 단 1명이라고 보시면 될 거에요. 

 

J: 저희 단체에서 만났던 난민 중에는 국제기구에서 일한 분도 있었어요. 그렇게 유능한 분도 한국에서 잘 지내실 것 같은데도 며칠 후에 만나면 풀이 죽어 있어요. 한 이웃, 개인에서 시작하기에 한국은 참 어려운 구조인 것 같아요. 난민 지원기관이 있지만, NGO가 해야 하는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야 결국 개인과 이웃에게까지 그러한 영향이 미칠 수 있는 것 같고요. 저희 단체에서는 지역주민과 난민이 함께 수영 수업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렇게 이웃 주민과 난민을 서로 소개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S: 올해 난민신청자가 2,000명이 넘었어요. 분명 갈수록 더 늘어날 텐데,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실 건가요?

 

K: 난민에 대한 보호책임은 국가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국가가 난민을 잘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거에요.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서 난민단체가 해야할 일은 생존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거고요. 단체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말이에요.


R: 오늘 이 자리가 이제 이 논의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논의를 어떻게 풀어가고 어떻게 이어나갈지 함께 고민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난센을 지지해주시길 바래요. 40년, 50년이 걸릴 이 길을 지치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본문으로]
  2. 당일 기록을 바탕으로 대화록이 작성되었으나, 기록 과정에서 참가자의 어조나 단어 및 표현 등이 생략, 편집 되었고 그로 인해 화자가 의미한 바와 상이할 수 있으므로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문으로]
  3. Designated Countries of Origin (DCOs): 35 countries are currently listed as DCOs. Claimants from these ‘safe’ countries will have their hearing at the Immigration and Refugee Board (IRB) scheduled within 30 days if they file for asylum from within Canada and 45 days if filed at port of entry (60 days for non-DCO claimants) [본문으로]
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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