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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Activities/활동가이야기

[안녕! 난민(暖民), 시즌2] 마중물을 붓는 동네 쌤, 김경연



청소년 단체 Educo의 상근활동가로서 동네 sam cafe를 운영하고 있다. 월전에서 10년간 활동했고, ODA watch의 실행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가치와 가능성을 믿고 지지하는 누군가가 되어주려고 하며, 지역사회에서의 의미있는 활동을 통해 청년들이 이미지와 환상에서 벗어나 삶의 실체가 있는 현장에서 진정 가치 있는 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지향하고 있다. 







Q.간단히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김경연이고요, 지금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이라는 곳에서 청소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양주에 들어온 지는 이제 다음 달이면 1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

이제 막 시작단계에요. 단체를 시작한지는 8개월이 됐고요. 














Q. 월드비전에 계실 때는 어떤 활동을 하셨었나요? 

  처음 6년은 해외사업팀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사업 지원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흔히 국제개발협력 사업이라고 하지요.

이후 4년간은 옹호사업팀에서 정책제안, 캠페인, 시민교육 같은 활동을 했어요.


  가장 주된 활동은 청소년 세계시민교육이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국제관계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들과 함께 세계시민학교라는 걸 했었어요. 국제개발이 하나의 블루오션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가 답답하고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국제로 눈을 돌리고 환상을 갖게 되고, 모두가 한비야가 되고 반기문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세계시민학교는 우선 대학생 멘토들을 초대해서 파트너로서 기획단계부터 평가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준비했어요. 대학생들을 ‘자봉’, ‘알바’ 라고 부르면서 허드렛일만 시키는 데 불만이 많았거든요.


  중1부터 고3까지 여섯살 터울로 참여자를 모집해서 세대 간의 체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형,언니들이 끌어주는 경험을 해보게 했어요. 그리고 3박 4일의 프로그램 동안 제가 추구한 것은 거품빼기 였어요. 청년이든 청소년이든 환상을 가지고 이미지를 소비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요. 진짜 사람을 마음으로 만나거나, 서로에게 울림이 있는 관계를 경험을 좀처럼 해본 적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거든요.  세계시민학교인데도 국제에 관한 내용이 전부는 아니었어요. 모든 프로그램에서 경쟁적 요소를 최대한 없애고, 잘해도 칭찬이 없었죠. 튀고 이기는데 에너지를 안 쓰니 애들이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나중에는 뭔가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더라구요. 에너지가 남고 여유가 생기니 옆의 친구들에게 반응하기 시작하더라구요. 누가 적응하지 못하고, 누가 힘들어하는 지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실수를 해도 “괜찮아” “멋있다” 하며 지지해주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포옹해주고…  그 맛들을 느끼면서 이틀째부터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더라구요. 처음 겪어 본 일들에 벅차서요. 멘토들이었던 대학생들도 처음엔 너무 힘들어했어요. 애들이 말도 안 듣고, 기도 세고, 반응도 없고, 엄마가 보내서 와서 그냥 가만히 있는 애들도 있고 그래서 말이에요. 그러다 첫날 저녁, 둘째 날 저녁 안에 변화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학생 멘토들이 울어요. 자기조바심 때문에 애들을 기다리지 못했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졸업식 때는 완전 눈물바다가 돼요. 


  첫 날 미래의 자기 명함을 만들어보고, 마지막 날에 다시 만들어 보는데,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아이들 중에 명함이 바뀌는 아이들이 나오더라구요. 작고 화려하지 않아도 주변의 아픔을 나누는 일,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아이들이 생기더라구요. 1학년 때 우리캠프에 참여했던 민사고 학생이 원주 주변의 중학교를 돌며 교육하는 서클을 만들어 나눔교육 활동을 하기도 했어요. 외교관이 되겠다고 외교학과에 갔던 이 친구는 외교학과 외교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2~3년을 방황하더라구요. 그러더니 결국에는 현실정치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풀뿌리 정치를 연구하고 싶다며 정치학 대학원을 갈 준비를 하더라구요. 이 친구처럼 그런 작은 체험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제가 하는 단체에 자원 활동가로 오거나 회원이 되어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어요. 작은 3박4일의 캠프였는데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끈이 될 만큼 강렬한 체험들을 서로 했고 울림들이 있었어요.




Q.  ODA watch에서는 어떻게 참여하고 계신건가요?

  ODA watch에서는 2007년부터 참여했어요. 어느 단체나 자원봉사자, 청년들의 국제개발에 대한 과도한 열정을 자원봉사로 소비시켜버리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이렇게 몰려든 청년에 대해 선배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청년들이 국제에 대한 환상을 깨고, 어느 현장에서 일하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의미있는 체험을 하는 활동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들 공감했었어요. 


  ODA watch는 정부가 세금으로 해외원조하는 것을 감시하고 있어요. 더불어 국제개발협력 전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을 하죠. 핵심은 청년 자원활동가들이에요. 사무국, 청년활동가, 실행위원이 역할은 좀 다르지만 모두 한 표를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동등한 활동가에요. 한 달에 한 번 신문을 내는데 70~80%의 글을 청년활동가가 써요. 아주 양질의 기사가 되고 있고, 외교부 한 부서에서는 필독하라는 지시가 있었을 정도가 되었죠.


  약간의 마중물 역할을 통해 청년들이 주체적 역할을 하는 활동을 하게 되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체험의 기회를 만들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청년 활동가들 중에서 해외에 가지 않겠다는 이들이 생겨요. 사람이 성숙해지고 사회가 성숙해진다고 할 때 자립, 홀로서기만을 얘기하기 쉬운데, 자립은 한 바퀴밖에 안돼요. 영어로 하면 자립은 independence인데, interdependence, 상호의존, 더불어 살아가기를 배워야 해요. 서로가 잘 의존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 하는 거죠. 일방적으로 ‘나는 큰사람인데 내가 도와주겠다’ 이건 환상이고 왜곡이에요. 청년들이 처음에 지구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고 왔다가, 스스로를 성찰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함께 땀 흘리는 체험을 하며 성장하는 것 같아요.




Q. 지금 하시는 단체는 어떤 곳인가요?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에게 주체로서의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공부를 잘하냐 못하냐에 상관없이, 한 쪽에서는 너무 과보호를 받아서 스스로 해볼 수 없고, 한쪽은 방치되어서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만들어놓은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잘사는 것에 대한 기준을 따라 살고 그렇지 않으면 루저인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돼죠. 청소년들이 결국은 스스로 계획하고, 도전하고, 성찰하는 자치활동을 해봐야 이 과정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취감을 느껴보고 자존감도 올라가게 돼요. 


  단체의 이름은 Educo이고 동네 sam cafe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동네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쌤” 하고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고 싶어서요. 동네에 우리를 이해해주는 꼰대가 아닌 선생님이 있고 우리끼리 뭔가 해볼 수 있는 공간이고 싶구요. 동네형 카페라고 하고 싶었는데 제가 너무 늙어서 좀 찔리더라구요 ㅋㅋ. 보통 청소년 공간들이 특정한 문제나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들만을 위한 공간이 많아 일반 청소년들이나 지역사회로부터 낙인감을 갖기 쉬운 것 같아서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맛있고 싼 음식 때문에 찾아오지만, 자기들만의 공간이라 생각하며 오게 되고, 저희들과도 제법 관계가 깊어지는 아이들도 늘고 있어요. 사업을 위해 성급하게 아이들을 동원하지 않으려고 해요. 아이들이 조금씩 모이고 비슷한 욕구들이 모아지면 동아리 활동, 문화활동, 여행 같은 활동들을 계획하려고 해요. 그 활동들은 그 활동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힘과 함께 하는 힘을 체험하고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고 봐요. 그러다 보면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되고, 실제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계발하는 직업체험이나, 직업멘토링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Q. Educo란 무슨 뜻인가요?

  Education의 라틴어 어원인데요. e는 ‘밖으로’라는 뜻이고 duco는 ‘꺼내다’라는 의미죠. 교육이 자꾸 무언가를 가르치고 주입하기 쉬운데요. 원래 교육이란  우리가 키우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잠재력, 그들이 힘을 끄집어내는 마중물이 되어주는 거라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또한 가지 의미는 Educational Community, 교육공동체에요. 저희 로고가 아이들이 레고블럭을 쌓고 있는 그림인데요, 레고블럭 쌓기처럼 청소년들이 함께 놀면서 만들어가는 공동체, 중심과 주변이 없는 모두가 멤버이자 주체로서 활동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뜻을 담았어요.



Q. 에듀코의 지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인간의 욕구를 얘기하면 생리적, 생존, 안전 이런 것만 욕구라고 하고, 매슬로 같은 사람은 그런 하위욕구를 달성하기 전에는 상위욕구를 추구하기 어렵다고 했잖아요.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빈곤, 어려움에 처해있어도 아름답고 싶고, 종교적 이상을 추구하고, 애정을 갖고 싶은 이런 욕구들이 통합적으로 되어있는 존재잖아요. 흔히 상위욕구라고 얘기하는 존중, 배려, 애정, 소통에 대한 욕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관계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함께 땀 흘리고, 성취해보는 경험들을 할수록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진다고 봐요. 심리학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면 뇌에 새로운 회로가 생긴다” 는 말이 있는데요. 그런 체험을 한 사람들은 자꾸 더 그렇게 살고 싶어지게 된다는 거죠.


  교육공동체 안에서의 교육이란 것도 기존에 있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마중물이 되어 서로의 안에 있는 존엄성, 고유한 재능, 잠재력을 발견해 나가는 거에요. 그 기쁨이 엄청나죠. 내 노력이 누군가의 삶이 기쁨이 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쁨이 인간에게는 큰 보람이 될 수 있어요. 그걸 체험하게 되면 대학을 못가도, 좋은데 취직하지 못해도 자기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많이 봐요. 뭔가를 같이 모여 할 궁리를 하고, 지역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걸 기회로 생각하는 모습들을 보게 돼요.




Q.월드 비전에서 하셨던 것과는 많이 다른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다른 길을 걷게 되신 건가요?

  저는 해외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보편적인 요소가 많이 있더라고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자본들이 같은 논리로 공략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개발, 자본의 개발 이런 것이 공통된 현상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국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대개 국제문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어요. 좋은 일을 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내 손이나 내 바지엔 흙을 묻히고 싶진 않은 거지요. 세계 평화에는 관심 있으면서 우리사회에서의 평화는 관심이 없고, 아프리카의 빈곤에는 관심을 갖지만 우리나라의 빈곤에는 관심 없는 그런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제가 전에는 해외현장, 지금은 국내현장에서 활동하는데 저는 이게 결코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과연 해외현장에서 활동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우리의 사업 실적을 위해서, 국위선양을 위해서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마저 개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고 봐요. 그곳의 시민사회나 주민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지·연대를 해가야 해요. 그런 생각으로 내가 발딛고 서있는 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이 현장들이 연결이 되고, 세계시민들이 서로 연대하고 교류하는 활동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이제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셨는데 에듀코 공동체의 활동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처음 양주, 특히 백석 지역에서 조사를 할 때 "여기는 힘들다, 여기는 어려울 거다."라는 얘기들을 여러 번 들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더 이 곳에 들어와 살아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도시지역과 격차가 큰 읍/면 지역, 그것도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어서 학교 간 격차가 심한 지역이어서 시민단체의 역할이 꼭 필요한 지역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학교마저 기대를 하지 않아서, 방치된 채, 자기 안에 있는 재능과 힘을 발견할 기회마저 차단되고 있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가장 안타깝게 했어요.


  지난 8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현실의 어려움도 많이 느꼈어요. 물적, 인적 자원이 너무 부족하니까 단체들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것도 이해는 가더라구요. 하지만 지역에 대해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우선 에듀코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로는 지역과 소통하기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공동체, 문화공간, 청소년 카페... 가령 이곳이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 비영리적 청소년 활동을 한다는 데에 대해 아이들이 감을 못 잡아요. “이렇게 팔면 안 망해요?” 하고 묻는 친구들이 많아요. “한 달 매출이 얼마나 돼요?” 하고 묻는 친구도 있었어요. ㅎㅎ 그냥 우리도 카페 같은데 들어가고 싶은데 여기는 싸게 팔고, 우리끼리 올 수 있어서 좋다, 그 정도의 단계에요. 근데 자주 오는 친구들 중에 혼자 오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에요. 애정결핍도 느껴지고, 따돌림으로 겪고 있는 아픔도 느껴져요. 한데 이 아이들은 학습지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능마저 많이 뒤쳐져 있는 걸 발견해요. 그 아이들에게는 사회성을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특히 많이 필요하고, 만들어주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부터 하는 거죠. 그 친구들에게 아픔이 있고 애정이 결핍되고,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표현방식과 이해방식이 떨어져서 왕따를 당하는 거거든요. 그 아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만 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활동을 하고 있어요.


  최근에 와서 반성을 한 게 우리가 지역주민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하고 활동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지역의 특성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특성에 따라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청소년공동체, 에듀코, 동네쌤카페라고 하니 청소년들, 주민들한테는 뭘 한다는 건지 감이 안 잡히는 거에요. 그래서 주민들의 욕구를 바탕으로 언어를 개발하려고 하는데, 그 키워드가 진로에요.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도 학부모님들도, 지자체들도 여기가 뭐하는 곳이구나 확실히 알 수 있겠죠. 대학 잘 가고 취업 잘하는 진로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와 꿈으로서의 진로 말이지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자신의 미래와 꿈에 대해 자신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에 대해 함께 연습하는 곳으로 말이에요. 그리고 나중에 정말 이 지역사회가 그런 부분에 대해 익숙해지고 시간이 쌓이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려고 해요. 




Q. 전문가의 손을 하나도 빌리지 않고 sam cafe가 만들어졌다고 들었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문을 열게 된 건가요?

 

  저는 뭔가 꾸준히 하는 걸 잘 못하는 데요 이사는 2년에 한번씩 꾸준히 하고 있어요. (집세가 올라가니까 매번 옮겨야 하는 건데요 ㅎㅎ) 혼자 사니까 선후배, 친구들을 불러요. 차만 하나 빌려서 같이 짐을 싸고 나르고 이사할 돈으로 재미있게 먹고 노는 거에요. 이사 하나가 우리가 오랜만에 만나고 놀 수 있는 축제가 되는 거죠. 샘카페를 만들 때도 로고, 목공, 색칠, 조명 이런 것 전부를 친구들이랑 같이 했어요. 두 달이 걸렸죠. 위층의 학원은 저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3일 만에 인테리어가 끝났어요. 그게 결과 중심, 소유중심의 사고고 빨리 가는 거잖아요. 그게 잘 갔다고 올바른 방향으로 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과정에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고 추억이 쌓였어요. 이 곳은 그 친구들에게 추억이 남은 장소가 되었고, 다시 오게 되고, 관심이 있는 회원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됐어요.




Q. 안정적인 생활과 미래를 버리고 나오신 건데 후회하지는 않으신가요?

  월드비전을 그만두기 3년 전부터 고민을 했어요. 또 제 소득하고 소비 패턴을 분석해보고서 ‘아 이런 거품이 있구나, 그럼 내가 핵심적으로 정말 필요한 건 이 정도니까 이 정도만 벌고 살면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게 제일 중요한 깨달음이었어요. 사람이 물질적으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 때 풍성한 관계와 정신에 에너지를 쏟을 여유가 생기게 되더라구요. 사람들이 자살을 결심할 때 그 전에 누군가에게 꼭 메시지를 보낸데요. “바쁘니? 시간있어?” 라는 식으로요. 우리는 보통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이름만 보고도 “이따 전화할게” 하는 식이 돼버리잖아요. 서로에게 품을 되어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거죠. 아까 말한 Interdependance를 생각하면 누군가를 품을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거고요. 제가 필요 중심으로 살아가다 보니 그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어디서 자원활동을 해달라면 기꺼이 할 수 있고, 제가 돈을 더 벌 수 있어도 생활 방식에는 변화가 없고, 여유 돈은 딴 데 유용하게 쓰게 되더라구요. 욕망을 위해 소비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길들여지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덜 쓰고, 덜 버는 게 제가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Q. 난센 활동에 대한 조언을 좀 부탁드려요. :)

 

  함께 등반 캠프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설악산 종주 같은 데를 가면 누구는 더 체력이 떨어지니 도와주기도 하고 오이 한 조각도 나눠먹고 그렇잖아요. 연대활동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건데요. 한진중공업 타워에 있던 김진숙 부회장이 강정을 걱정하고, 강정에 있는 사람들이 용산을 걱정한다는 거였어요. 힘들어도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축복인거에요. 난민들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걸 체험하는 게 굉장히 값질 거라 생각해요. 우월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들도 누군가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고 디딤돌이 되어줄 수 있다는 체험 말이에요. 또 우리 자신에게도 도움을 주고 받아보는 게 값진 체험일 수 있을 거 같고요. 


  저는 우리 활동가들이 회원들에게 되돌려주고 나눌 수 있는 건, 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거라고 생각해요. 목표나 결과, 실적 중심의 활동을 하다 보면 삶의 이야기가 결핍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자칫 포장하고, 과장하기 쉽거든요. 저희가 겪어가면서 생기는 고민, 좌절, 기쁨, 희망, 이런 것들을 주절주절 나누는 거죠. 난센을 하면서 힘든 게 많이 있잖아요. 그런 걸 그냥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눈물을 짜내서 후원을 받아내려는 식이 아닌, 난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도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선생님, 의사, 성직자일 수도 있는데 난민이 되기 전 그들 삶의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 같아요.


  난민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작업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복지사업을 해보면 아픔이 크고 공감대가 명확할수록 결속력이 강한 자조그룹이 형성되거든요. 난민들도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 내 고향에서 쫓겨났다는 것, 자녀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 등과 같은 공통의 아픔이 있을 텐데, 그들이 서로 돕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작업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흩어져 있는 사람을 관리하려면 지역의 활동가들, 자원활동가를 발굴하고 키워내야 하겠죠. 저도 이 지역의 이주자나 난민들이 문제에 관해서도 장기적으로 고민을 하거든요. 그런 조직가들을 발굴하고 키워내서, 뭔가를 많이 해주는 게 아니라 연결고리의 계기들을 만들어 주는 거죠. 그러면서 그들이 객관적, 물질적 조건이 결핍되어 있음에도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같이 자신들의 삶에 대비하고 한국에 대해 준비하고 여러 가지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겠죠. 저는 자신이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는 것 그게 중요한 지표라고 봐요.